부끄럽지 않은 돈
부끄럽지 않은 돈
  • 성홍규 청주시 공보관 공보팀 주무관
  • 승인 2023.05.07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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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성홍규 청주시 공보관 공보팀 주무관
성홍규 청주시 공보관 공보팀 주무관

 

공복(公僕)이 된지 채 석달도 되지 않은 내가 `공직자의 청렴(淸廉)'을 이야기하는 것은 주제 넘는다 생각한다.

그래도 생활인으로서 돈에 대한 이야기는 해도 되지 않을까.

청렴을 돈 문제에 직결하는 것은 무리가 있겠지만 돈 얘기만큼 청렴을 이야기하기 좋은 것도 없지 않을까.

지난 2월 초 임용장을 받고 임기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공복이 되기 전엔 지역일간지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기자 일을 하면서 결혼을 했고 아들을 낳았다. 이제 두 돌하고 두 달이 지났다.

아들은 두 돌이 될 즈음부터 정확한 발음으로 몇몇 단어를 말하기 시작했다.

아들이 말을 시작하기 전 출근할 때면 “아빠 돈 벌러 갔다 올게”라고 인사를 했다. 말을 못 하는 아들은 손을 흔들며 잘 다녀오라고 인사했다.

아들이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출근 인사가 업그레이드됐다. 출근하면서 “아빠 어디 간다고?” 물어보면 “돈”이라고 대답한다. 또 “돈 벌어서 뭐 산다고?” 물어보면 “딸기, 빵”이라고 대답한다.

아들은 `돈 벌러 간다'는 출근 인사를 기억했다. 여기에다 아내가 아들에게 딸기와 빵을 주면서 “아빠가 돈 벌어서 산 거야”라고 알려 준 결과가 만들어낸 대화다.

아들은 `일'과 `돈'의 관계를 알지 못하고 하는 대답이겠지만 참 부끄러운 대화지만 난 그 짧은 대화를 좋아한다. 난 기자였을 때나 공복인 지금이나 일을 하고 그 대가로 돈을 받는다. 일터는 변했어도 변하지 않는 건 `일을 하고 돈을 번다'는 것이다. 내게 `돈은 일을 해야 버는 것'이란 사실은 변함 없다.

불로소득을 폄훼하는 건 아니지만 돈은 전통적으로(?) 육체적 또는 정신적 노동의 대가로 주어져야 맞다고 믿는다. `불로소득의 맛'을 못 봐서 하는 얘기일 수도 있다.

`부끄러운 돈이 어디 있느냐. 돈은 다 돈이지'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스스로는 안다. 내 손에 쥐어진 돈이 부끄러운 돈인지, 부끄럽지 않은 돈인지.

난 예나 지금이나 청렴한 삶을 살기 위해, 결백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다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처자식에게, 가족에게 부끄럽지 않으려 노력한다.

내가 일을 하고 돈을 벌면서 가장 즐거운 것은 가족과 함께 먹을 음식을 살 수 있다는 점이다. 아들이 먹을 딸기와 빵을 사는 건 물론이고 아들과 아내를 차에 태우고 먹을거리를 포장해 부모님을, 장인어른·장모님을 뵈러 가는 건 내 큰 즐거움이다.

내 즐거움이 부끄럽지 않기를 바란다. 내 처자식이 먹을 딸기와 빵은 양가 어른께서 드실 먹을거리는 내가 부끄럽지 않게 번 돈으로 마련한 것이길 바란다. 평생 그러하길 바란다.

청렴하게 살고자 노력하는 것은 어렵지만,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것은 그 보다 쉬울 수 있다. 나는 쉬운 길을 택했다. 기자일 때도 그랬고 공복인 지금도 그렇고 부끄럽지 않게 사는 쉬운 길을 택했다.

어버이날엔 부끄럽지 않게 번 돈으로 뜨끈한 갈비탕을 사서 본가에, 처가에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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