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교향악과 담쟁이덩굴
봄의 교향악과 담쟁이덩굴
  • 이현호 충북예총 수석부회장
  • 승인 2023.04.26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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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이현호 충북예총 수석부회장
이현호 충북예총 수석부회장

 

담쟁이 덩굴이 봄이면 학교 본관을 연녹색으로 뒤덮고, 초여름이면 빨간 벽돌을 큰 손으로 휘감아 시원함을 더하는 학교가 그리운 4월의 오후다.

이렇게 아름다운 봄날이 몇 년 전 인가부터는 황사가 하늘을 뒤덮고 봄답지 않게 쌀쌀한 조석의 날씨가 사람들을 움츠리게 하고 따스한 봄을 아쉬워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봄날은 구름처럼 지나가고 있다.

아쉬운 봄 날씨에 속상해하던 차에 기타를 연주하는 지인이 동영상 한편을 보내왔다. 기타반주에 맞춰 정다운 노래를 부르는 영상이었다. 영상 속에는 나하고도 친하게 지내는 조동욱 교수의 노래에 기타를 치는 이상권 교수가 함께 연주하는 영상이었다. 영상을 돌려보니 잔잔하고 애절한 음색에 노래를 잘 감싸는 기타의 반주로 둘만의 서정적인 앙상블이 잘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 노래는 실로 몇십 년 만에 들어보는 가곡 `동무 생각'이었다.

조 교수의 애절한 노래는 그동안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 친구들과의 추억과 나의 아련한 마음을 사춘기 시절의 중학교로 돌아가게 했다. 그리고는 오랜만에 들어보는 노래의 아름다운 가사와 애절한 멜로디가 나의 머릿속을 뱅글뱅글 맴돌게 했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나는 흰 나리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 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이 노래는 중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음악 선생님의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즐겨 배우고 부르던 가곡이었다. 노래 가사의 내용은 학창 시절 넘나들던 고향의 언덕과 친구들을 그리워하는 동요의 느낌이 드는 가곡이다.

가곡 `동무 생각'은 이은상 님의 시에 작곡가 박태준 님이 곡을 붙여 만든 1922년에 발표된 가곡으로 원래 제목은 `사우(思友)'였으나 뒤에 제목을 순수한 우리말로 풀어쓰게 되어 `동무 생각'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가사의 내용 가운데 나오는 청라언덕은 대구에 있는 아름답던 언덕의 이름이다. 청라언덕은 20세기 초 개신교 선교사들이 거주하던 곳으로 선교사들의 집이 푸른 담쟁이덩굴로 뒤덮여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푸를 청(靑), 담쟁이 라(蘿)를 써서 `푸른 담쟁이덩굴'이란 뜻의`청라언덕'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청라언덕에는 가곡 `동무 생각'의 노래비가 세워져 있으며 과거 선교사들이 생활하였던 주택과 함께 아름다운 정원이 조성되어 있고, 최근에는 드라마 촬영지로도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나에게는 초년의 교사 시절 빨간 벽돌로 지었던 일본식 본관 건물에 초록의 담쟁이덩굴이 아기 손바닥 크기의 잎사귀로 본관동을 가득히 옷을 입혀 여름이면 시원하고 가을이면 빨간 벽돌색과도 잘 어울리는 단풍의 담쟁이로 젊은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주던 좋은 추억을 가진 청라이다.

나이가 들면서 노래 한 자락, 시 한 구절이 마음에 진한 감동을 준다. 오랜만에 마음으로 들은 `동무 생각'은 멀고 멀었던 사춘기 유년 시절을 다시 소환하고 아이들과 즐겁게 교실에서 웃고 떠들고 노래하던 가장 행복했던 시절로 담쟁이와 함께 과거로의 타임 여행을 떠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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