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의 날
행운의 날
  • 김진숙 수필가
  • 승인 2023.04.19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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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김진숙 수필가
김진숙 수필가

 

나는 태어날 때부터 행운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고 사남매 중 유일한 딸이어서 바쁜 엄마 대신 집안의 궂은일을 도맡아 해야 했다. 키 큰 엄마를 닮지 못하고 키 작고 눈 작은 아버지의 외모를 고스란히 빼닮아 예쁘다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특별히 잘 하는 것도 없었고 뭐 하나를 진득하니 하는 성격도 못 되어서 내적으로도 내세울 것 없는 마음조차 가난한 사람이었다. 그러다보니 간혹 누군가 칭찬을 해줘도 고맙게 받지 못하고 그저 인사치례일 거라고 혼자 치부하는 버릇이 생겼다. 자존감은 바닥이었고 자신감도 그와 함께 추락했다.

주위를 살펴보면 운 좋은 사람은 많았다. 돈 잘 버는 남편 만나서 호강하며 사는 사람, 예쁜 외모로 눈길을 끄는 사람, 똑똑한 자녀를 둬서 어깨에 힘주고 사는 사람, 하다못해 동네마트의 경품행사에서 TV나 냉장고 같은 큰 상품을 타는 사람까지 운의 종류도 다양하게 많은데 그 중에 나한테 해당되는 것은 없으니 씁쓸할 따름이었다.

그러던 내게도 나도 그리 운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일이 생겼다. 그 생각은 아이러니하게도 내 몸속에 암세포가 있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 찾아왔다. 암이라는 병의 무게에 눌려 좌절하고 있을 때 순한 암인데다 아직 진행이 많이 되지 않아서 치료만 잘 받으면 완치될 수 있다고 의사가 친절하게 설명을 해 준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이라는 말이 있던가? 그런데 그 때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너무 커서 불행히도 내가 암에 걸렸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수술 날짜를 잡고 내려오면서도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다. 불행이 찾아왔으되 그것을 이길 방도가 있을 때 그것도 행운이라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된 사건이었다.

얼마 전 `지선아 사랑해'의 저자 이지선씨가 TV에 나온 것을 보았다. 스물세살 나이에 음주운전자가 낸 사고로 전신에 화상을 입어서 살 가망도 없고 살아도 사람 꼴이 아닐 것이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았던 지선씨가 교수가 되어 전파를 탄 것이다.

삶이 힘들어 죽음을 선택할 때에는 아무런 노력도 필요하지 않다. 삶을 포기하는 용기만 있으면 된다. 그러나 도저히 살기 힘든 상황에서 삶을 선택했을 경우에는 죽을 만큼의 고통을 이겨내야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화상으로 일그러진 얼굴과 절단된 손가락, 수시로 거듭되는 피부이식 수술, 외계인을 보는 듯한 사람들의 시선 그 모든 악조건을 이기고 그녀는 살아냈다. 고통 속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았던 마음, 절망의 요소를 외면하고 희망에만 목표를 두었던 마음, 그 마음을 찾아낸 것이 불행 중에도 찾아온 그녀의 행운이란 생각을 한다.

그러기에 그녀는 사고 이전의 평범한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말을 했을 것이다. 그녀가 찾아낸 행운은 엄청난 불행을 겪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맛볼 수 없는 특별한 것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선배하나가 나를 보고 너는 어디에 복이 붙어서 이렇게 잘 사느냐는 얘기를 해서 놀란 적이 있다. 내가? 복 있는 사람이라고? 어째서? 여러 개의 물음표를 잠재운 선배의 대답은 “지금 별 문제없이 살고 있잖아”였다. 지금까지의 삶이 고단했을지라도, 내세울 것 없는 삶이었을지라도 지금 문제없이 살고 있으니 복 받은 인생이라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후로 삶에 대한 만족도가 상승했으니 그 선배야 말로 내 인생에 찾아온 행운이 아니었나 싶다.

오늘이 아무 문제없는 사람은 분명 오늘 행운의 날을 살고 있는 것이다. 행운의 여신의 보호를 받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행운의 여신의 그 따뜻한 보살핌을 감지하면서 하루하루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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