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듣기 싫은 이름
더 이상 듣기 싫은 이름
  • 반지아 청주 초롱꽃유치원 행정부장
  • 승인 2023.04.09 18: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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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반지아 청주 초롱꽃유치원 행정부장
반지아 청주 초롱꽃유치원 행정부장

 

최근 한 드라마가 종영이 된 후에도 그 인기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바로 학교폭력 피해자가 일평생을 걸고 가해자들을 대상으로 한 복수에 성공한 모습을 그린 `더 글로리'이다.

시청자들은 선공개된 시리즈를 보며 주인공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모습에 분노했고, 마침내 후 공개된 시리즈를 보며 간절히 바랐던 권선징악의 결과가 나오자 한껏 환호했다. 하지만 모든 사회적 현상에는 `이면'이 있듯이 이 드라마가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알리는 데는 일조했을지 몰라도, 미처 신경 쓰지 못한 면이 있는 듯하다. 바로 드라마가 아닌 현실 속 동은이에 대한 배려이다.

드라마의 인기가 절정으로 향해가고 있을 때, 우연히 현실판 동은이들이 드라마를 보고 눈물로 써 내려간 글들을 읽게 되었다.

그때 그 시절처럼 학교폭력이라는 굴레가 자신의 삶을 망쳐버릴까 두려워 꼭꼭 숨기고 살아야만 했다는 동은이, 그래서 주변에서 “더 글로리 봤어? 진짜 재밌어~”라며 굳이 내용을 말해줄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도 아무렇지 않은 척 호응해줄 수밖에 없었다는 동은이, 자신의 아픈 시절을 알고 있는 사람이 “드라마 보면서 그래도 간접적으로나마 통쾌하지 않았어?”라고 가볍게 건넨 질문에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현실에서는 그렇게 계획적이고 치밀한 복수가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누가 내 인생까지 포기하면서 복수에 올인할 수가 있겠어? 그저 묻고 사는 거야, 피해자의 삶은 그럴 수밖에 없는 거라고” 말했다가 지인과의 관계가 어색해지고 또 하나의 상처를 가슴에 새길 수밖에 없었다는 동은이까지.

이들은 하나같이 드라마가 자신들의 상처와 함께 그들을 평생 트라우마에 갇혀 살게 만든 연진이에 대한 기억까지 다 헤집어 놓았다고 울부짖고 있었다.

그들의 글이 마음에 내려앉자 드라마의 흥행과 함께 하나의 유행어가 되어버린 `연진이'라는 등장인물의 이름이 거북해지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배우가 연기를 너무 잘해서, 누군가는 그 등장인물의 옷차림이 너무 멋있어서, 누군가는 드라마 자체가 너무 재미있어서 가볍게 부르는 그 이름이 다른 이들에게는 들릴 때마다 상처로 남는다고 생각하니 이제는 정말 그만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찬찬히 생각해보면 비단 학창 시절 직접적인 폭력의 피해를 본 사람들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어찌 사람이 살면서 단 한 번도 `연진이'를 만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린 시절 소위 `빵 셔틀' `심부름 셔틀'이란 이름으로 당한 괴롭힘을 시작으로, 성인이 되어서도 `갑질'과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장애물을 피해 교묘하고도 치밀하게 나를 벼랑 끝으로 모는 상사, 혹은 후배와 동료까지 세상천지에 깔린 게 `연진이'일텐데 말이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이 너무도 가볍게 `연진이'를 찾는다.

물론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이 드라마가 연진이의 악행과 동은이의 눈물로 얼룩진 세상을 깨끗이 씻어줄 거라는 기대는 애초에 없었다. 하지만 최소한 이 드라마가 `학교폭력'이란 예민한 주제를 다룬 만큼 이 주제가 단순히 오락거리로 일정 기간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다 사라지는 일만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더 나아가 피해자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따뜻한 배려는커녕 가해자로 나온 인물의 이름만이 계속 언급되는 작금의 현상이 과연 옳다고 할 수 있을까.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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