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의 만남
그녀들의 만남
  • 김경수 시조시인
  • 승인 2022.05.10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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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경수 시조시인
김경수 시조시인

 

그녀가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한켠에서 식사를 하던 영호는 한 동네 사는 그녀가 왜 우는지 궁금했다. 그녀는 칠순을 바라보는 오랜 이웃이었다. 그 날 그녀가 신혼부부를 보는 순간 반가움이 그들을 향해 다가가기보다 놀라움과 두려움이 앞섰다. 그녀들의 만남은 동네 어느 식당에서였다. 조카딸이 결혼식을 올린지 며칠 지나 고모인 그녀에게 인사를 하러 온 것이었다. 그녀는 조카딸을 보는 순간 감회가 새롭고 대견스러웠다. 어찌보면 조카딸이 아니라 딸이 될 수도 있었던 아이였다. 그런 이유로 조카딸을 만난 것이 누구보다 남달랐다. 그녀는 조카딸의 얼굴을 바라보며 주마등처럼 스쳐간 시간 앞에서 자신의 초라한 그림자를 감추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애써 속내를 덮고 그간의 안부를 물으며 기쁜 마음으로 조카딸을 맞이하였다. 그럼에도 그녀는 눈가에 지난 날이 어른거려 눈시울이 붉다가 끝내 눈물을 적시고 말았다. 그런데 그녀가 자꾸만 흐느껴 울었다. 몇 잔을 거듭한 술이 과거를 회상시키며 아픈 기억 속으로 그녀를 끌고 가고 있었다. 울음소리가 시간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급기야는 큰 소리로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슬픔과 서러움이 아니었다. 조카딸에 대한 미안함과 죄스러움을 그녀는 어찌 할 바를 몰랐다. 그 날이었다. 남동생이 떠나던 날 누나인 그녀에게 조카딸을 부탁한다고 했을 때 그녀는 차마 아니라는 말로 거절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의 현실은 그 부탁과 약속을 지킬 수가 없었다. 그 날 이후 그녀는 죄인처럼 수많은 고통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마치 자식을 버린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었다. 그런 것을 알면서도 그녀에게 가난이란 가혹한 삶은 힘겨운 살림살이의 나날들이 이어져갔기 때문이었다. 그렇듯이 현실은 냉혹하고 냉정한 것이었다. 결국 어린 조카딸을 물리치며 돌아서야 했던 그녀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지금 저 울음소리 속에서 그 옛날의 아픈 상처가 눈물로 묻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느덧 시계바늘은 몇 칸을 건너 초저녁의 만남은 밤을 향해가고 있었지만 그녀의 울음은 그칠 줄 몰랐다. 어찌보면 아무리 힘들어도 숟가락 하나 더 놓는 셈치고 어우렁 더우렁 함께 살았으면 어찌 됐을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후회감 속에서 오는 스스로의 위로와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그녀의 마음을 조카딸은 아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울고 있는 그녀를 우두커니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것 같았다. 어쩌면 조카딸은 냉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젠 제법 시간이 많이 흘러갔다. 조카딸 부부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리고 조카딸은 그녀를 포옹하듯 감싸 안으며 위로를 한 후 그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그들이 떠난 후에도 밤은 깊어가는데 그녀의 울음은 그 자리를 떠날 줄을 몰랐다.
진실은 어찌 생겼을까. 진실과 사실은 다를 수 있다. 그래서 시시비비가 얽히고 ?霞?충돌과 갈등을 초래하기도 한다. 만약에 거짓이 화려한 사실이고 진실이 구차한 사실이라면 진실은 어려움과 곤궁으로 빠져들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보여줄 수 없는 진실이 그럴만한 가치를 지닐 수 없기 때문이다. 가족으로 끌어안아야 했었지만 현실의 당면한 사실이 변명과 후회의 아픔으로 각인될 수밖에 없었던 진실은 얼굴을 보여줄 수가 없는 존재로 살아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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