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지기 전에
벚꽃이 지기 전에
  • 신미선 수필가
  • 승인 2022.04.12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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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신미선 수필가
신미선 수필가

 

월요일 아침 직장동료와 함께 차 한 잔을 책상에 놓고 주거니 받거니 주말 지낸 이야기가 오갔다. 그녀가 먼저 딸내미를 보러 서울을 다녀왔다며 이야기의 포문을 열었다. 가는 내내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이 봄볕으로 가득했고 길가엔 벚꽃이 흐드러져 눈 뗄 틈 없이 감탄사를 연발했다고 했다. 그런데 벚꽃 만발한 길을 내달리다 어느 순간 뜬금없이 눈물이 쏟아져 결국 중간에 차를 세우고 목놓아 울었단다. 한참을 울고 나서야 마음이 진정돼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며 웃는데 그 찰나 그녀의 눈가에 또 물기가 촉촉하다.
사실 그녀는 지난겨울 친정엄마가 돌아가시고 한동안 우울해했다. 엄마와 유독 정이 깊어 시골 친정집 근처에서 직장생활을 주로 했고 꽃을 좋아해 시간이 날 때마다 함께 꽃구경을 자주 다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모녀(母女)의 관계를 넘어 함께 시간을 공유하고 추억을 나누던 친구 같던 엄마가 서너 해 노환으로 서울 병원에 입원해 계시다 돌아가셨단다. 엄마를 병원에 모셔놓고 주말마다 이 길을 내달려 오고 가던 그 순간들이 떠올라 눈물이 복받쳤다고 할 때 나도 순간 울컥했다. 
나는 지난 주말 남편과 함께 청주시 외곽의 가덕면으로 아버님 산소에 다녀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음성에서 출발해 증평읍 좌구산을 돌아 미원면 시골길을 내달려 추모공원으로 차를 몰았는데, 가는 내내 벚꽃이 휘날려 눈이 즐거웠노라고 했다. 청주 시내를 거치지 않아 번잡하지 않고 거리도 짧아져 시간을 줄일 수 있어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정말로 추모공원을 향해 가는 굽이굽이 좌구산 자락마다 벚꽃이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질서정연한 가로수가 아닌 길가에 아무렇게나 심어진 크고 작은 나무들이 저마다의 색으로 눈이 부셨다. 늘 그렇듯 들녘에는 봄을 맞은 농부의 손놀림이 잠들었던 밭고랑을 깨우느라 분주한데 그 뒤로 보이는 먼 산의 분홍빛 은은함이 초록을 배경으로 고요히 풍광을 더하고 있었다. 
그날 나는 남편과 함께 차를 타고 가며 그가 꺼내놓은 벚꽃과 아버지와의 추억담을 들었다. 초등학교 입학선물로 사준 새 운동화를 잃어버리고 울면서 집으로 돌아온 날, 엄마한테 혼이 날까 무서워 대문가에서 서성이는데 바깥일을 보고 들어오던 아버지가 연유를 묻고는 말없이 손을 잡아 장으로 향했던 기억을 그는 웃으며 이야기했다. 두 부자가 함께 걷는데 벚꽃잎이 바람에 날려 싸락눈처럼 떨어졌다는 세세한 기억까지 남편은 지금껏 유년의 그 봄날을 잊지 않았나 보다. 평소 엄격하고 과묵하셔서 늘 어려웠던 아버지였는데 그날만큼은 새로 산 운동화를 신고 서로 손을 맞잡은 채 벚꽃길을 함께 걷던 기억이 이맘때면 생각난다는 것이었다. 
꽃이건 식물이건 봄이 되면 저마다 본래 자기 자리를 찾아 돌아오는데 더는 만날 길 없는 누군가와 사랑했던 저들의 지난 시간, 봄이 깊어지면 그리운 기억에 눈시울 붉히는 이들을 보며 한편으로 이기적인 위로를 얻는다. 또다시 찾아온 봄을 함께 맞을 수 있는 소중한 이기 아직도 내 옆에는 남아 있으니 감사한 일 아닌가. 벚꽃이 지기 전에 오늘도 시골 친정집 마당에서 두런두런 한적한 봄을 보낼 부모님을 모시고 나들이를 떠나야겠다. 그래서 벚꽃 흐드러진 아래에서 사진을 찍고, 맛집이라고 소문난 식당을 찾아 함께 음식을 먹으며 깊어가는 이 봄날을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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