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유산
아버지의 유산
  •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
  • 승인 2022.02.13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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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여는 창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

 

아버지는 숙명처럼 짊어진 가난을 물려주지 않으려고 엄청나게 노력하셨다. 지금도 생생히 떠오르는 모습은 도배지처럼 붙여 놓았던 공무원 예상 문제지다. 서도, 누워도 볼 수 있었고, 심지어 화장실벽까지 붙여 놓으셨다. 네 번은 실패했지만, 다섯 번째 성공함으로써 힘겨운 가난을 극복하셨다. 작은 여유가 생기자 아버지는 끊임없이 책을 사주셨다. ‘어깨동무, 소년중앙’같은 어린이 잡지부터, ‘폴타크 영웅전, 삼국지’등 위인전을 넘어, ‘한국 단편소설, 세계 명작 소설, 세계 사상전집’까지 다양한 책을 늘 주변에 놓아 주셨다. 초등학교에서 대학을 마칠 때까지, 직업을 갖고 가정을 꾸릴 때까지,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자기 뜻을 강요하지 않으셨다. ‘돌봄, 성장, 자유’를 실천으로 보여주셨다. 아버지는 필요한 모든 순간에 함께 계셨고, 스스로 삶을 선택할 수 있게 도와주셨다. 이런 아버지의 유산 덕분에 나와 동생들은 잘 자랐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아무리 좋은 선의라도 강요하면 폭력이 된다. 좋으신 하느님은 우리를 다그치지 않으신다. 자유의지를 소중한 선물로 주신 것이다. 자녀를 신뢰하고 선택을 존중한 아버지, 삶의 모든 순간을 함께 한 모습에서 아버지의 유산을 발견한다.

15년 정도 천주교 청주교구에서 운영하는 ‘아버지학교’에 봉사자로 활동했다. 2천 명 넘는 아버지들을 만났다. 삶의 방식과 환경을 달랐지만, 자녀들에게 좋은 부모가 되고 싶은 목적은 같았다. 좋은 아버지가 되어 자녀들에게 훌륭한 유산을 물려주고 싶어 한다. 어떤 유산을 물려주고 싶을까? 대부분 좋은 학교를 나와서 안정된 직장에 취업하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 부모는 열심히 일한다. 자신의 많은 것을 희생하며 초점은 모두 자녀에게 맞춘다. 내 삶을 희생해서라도 자녀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어떤 아버지들은 자신의 아버지를 미워하는 마음으로 괴로워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로 힘들어한다. 이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닮고 싶지 않았던 아버지를 자신이 닮아가는 모습을 발견한다. 아버지의 유산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녀에게 전달된 것이다. 유산은 무엇인가를 만들어 선물처럼 자녀에게 주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의 삶이 자녀에게 흘러가는 것이다. 돈을 벌어서 돈을 주는 것이 아니다. 집을 지어서 집을 주는 것도 아니다. 아버지의 삶을 자녀가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것이다. 결과물이 아닌 삶의 과정이다.

아버지의 삶은 그대로 자식들에게 대물림된다. 오늘을 사는 아버지의 모습은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들이 물려준 삶이다. 내가 받은 삶의 유산이 좋은 것이라면 그대로 살면 된다. 그러나 내가 받은 유산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면 끊어 버려야 한다. ‘알코올 중독, 우울증, 폭력, 도박’과 같은 유산은 정말 생명력이 길다. 자녀를 넘어, 그 후대까지 계속해서 영향을 준다. 이러한 악습을 유산으로 물려주고 싶지 않다면 끊어내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가 선물이다. 내가 가진 것을 남에게 줄 수밖에 없는 존재다. 아버지는 자신의 것을 자녀에게 준다. 유산은 이렇게 삶에서 삶으로 전달된다.

자녀의 행복을 원한다면 아버지들이 먼저 행복해야 한다. 아버지가 행복해야 행복이 유산이 된다. 누구도 다른 이의 삶을 대신 살 수 없다. 우리 아이들은 자기의 선택과 방법으로 잘 살 것이다. 그들의 삶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우리 삶을 잘 살자. “아버지가 물려주신 행복의 유산으로 저는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큰아들이 신병훈련소에서 보낸 빛바랜 엽서 한 장이 오래도록 나를 행복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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