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남불의 변절자
내로남불의 변절자
  •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 승인 2021.12.23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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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온 산이 울긋불긋 단풍으로 곱게 물들었던 가을이 떠나고 완연한 겨울의 한기가 느껴지는 우암산 둘레 길을 산책했다. 한여름 그 푸르던 나뭇잎들은 누런 낙엽이 돼서 땅에 떨어진 채 이리저리 뒹굴고 있었다. 영원할 것 같던 신록의 생명력도, 가을의 숙살지기(肅殺之氣) 앞에서 한풀 꺾이더니, 겨울이 깊어지면서는 하나 둘 생명의 끈을 놓고 땅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목격했다. 그 와중에 소나무와 잣나무 등만이 여전히 푸른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음이 눈에 띄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소나무를 바라보다 문득 논어에 소개된 공자님의 말씀 한 대목이 떠올랐다.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야(歲寒然後知松栢之後彫也)란 구절로,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다른 나무보다 뒤늦게 시듦을 알게 된다”는 의미의 가르침이다.

어느 정도의 지적 수준을 갖춘 현대인들은 사랑 자비 이해 양보 나눔 등의 좋은 말들을 잘 알고 있다. 또 필요할 경우 그와 같은 말들의 의미를 멋지게 설명하고 강조하기도 한다. 그리고 몇몇 사람들은 사랑 자비 이해 양보 나눔 등의 말을 입에 올리며 은근히 목에 힘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막상 자신의 이득과 직접 연관이 있거나, 힘든 상황을 만나게 되면, 언제 그런 고상한 말들을 했느냐는 듯이, 자신의 이득을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자신이 그토록 강조했던 사랑 자비 이해 양보 나눔 등은 추운 겨울이 오기 전 일시적으로 푸르름을 뽐내던 나뭇잎일 뿐 정작 한기를 동반한 찬 바람이 불어오면 우수수 떨어지면서 쇠락해가듯 우리 주변에서 자신의 이득을 위해 이렇게 저렇게 변절자로 전락하는 소인배들을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 세상에서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인간들끼리 지켜야 할 도리에 대해 잘 아는 것만으로도 장한 일이다. 그러나 자신의 이득과 무관한 지공무사한 마음으로, 그 아는 바를 실천하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삶을 살아낼 수 있다면 더욱더 귀한 일일 것이다. 특히 자신의 이득과 직접적인 연관 관계가 있을 때조차, 팔이 안으로 굽는 일 없는, 지공무사한 마음으로, 사랑 자비 이해 양보 나눔 등의 소중한 덕목들을 의연하게 실천할 수 있다면 군자일 것이다. 추위가 닥쳐와도 쉽게 시들지 않는 소나무나 잣나무처럼, 어떤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올곧은 신념을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다면, 그가 바로 군자일 것이다. 여기저기서 귀동냥을 했거나, 책을 통해 알게 된 단순 지식은 세포 하나하나 속에 용해돼야만, 지행합일이 가능해진다. 그렇지 않다면, 무언인가를 안다는 착각인 동시에 결국 아는 게 병이 될 뿐이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 유행하기 시작한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의미의 `내로남불'이란 말이 있다. 머리로만 사랑 자비 이해 양보 나눔 등의 말을 건조하게 이해한 뒤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 타인을 지적하며 깎아내리는 수단으로 오남용 하거나, 자신에게 유리하고 상대방에게 불리하도록 이중 잣대를 들이대며 상황을 왜곡하는 행태를 지적할 때 쓰는 말이다. 자신과 타인을 차별하지 않는 가운데 언제 어디서나 모든 잣대를 동등하게 들이대는 큰 사람을 군자라고 할 수 있다. 요즘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대선 주자 중에서 타인에게 엄격하고 자신에게 너그러운 이중 잣대를 휘두르며 `내로남불'의 전형을 보이는 자는 누구인가? 그럴듯한 말로 인기를 끌려고 하면서, 내로남불'의 전형을 벗어나지 못한 채, 시시각각 변절하는 소인배는 누구인가? 내년 대선까지 유권자의 푸르른 혜안으로 잘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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