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수봉 콘서트의 여운
심수봉 콘서트의 여운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21.09.29 17: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방송사들의 추석특집 경쟁은 안방극장의 호재입니다.

시청률을 올려야하는 제작진들은 피를 말리지만 골라보는 재미가 쏠쏠한 시청자들은 호사를 누립니다.

KBS 2TV가 연타석 홈런을 쳤습니다.

지난해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공연이 그랬고 금년에 `피어나라 대한민국 심수봉' 공연이 그랬습니다.

시청률 29%의 나훈아 콘서트는 팬들이 방영시간을 손꼽아 기다릴 정도로 주목을 끌었던 터라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지만 시청률 11.8%의 심수봉 콘서트는 경이로운 성과였습니다.

심수봉 자신도 섭외를 받고 얼떨떨했다고 한 걸 보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심수봉보다 히트곡이 많은 유명가수들이 즐비할 뿐만 아니라 안방의 관심도도 그리 높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코로나를 극복하려는 사회분위기에 알파가 되는 노래에 방점을 두고 캐스팅한 KBS의 전략이 주효했음입니다.

추석명절 연휴임에도 고향방문은커녕 가족 상봉조차 마음 편히 하지 못하는 어깨 축 처진 이 땅의 민초들에게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되는 노래를 부를 가수가 바로 심수봉이라고.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심수봉! 그는 누가 뭐래도 현존하는 대한민국 여성 최고의 싱어 송 라이터이자 Legend 가수입니다.

피아노와 드럼 연주도 수준급인 타고난 음감의 소유자일 뿐만 아니라 `그때 그 사람',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무궁화', `조국이여', `올가을엔 사랑할거야'가 웅변하듯이 대부분 자신이 작사·작곡한 노래로 울림을 줍니다.

특유의 애절한 단조의 창법과 선율을 장악하는 비음 섞인 떨림 그리고 한국적인 정한이 깊게 배인 음색으로.

그런 그녀의 콘서트를 지난 19일 저녁 명절 쇠러온 아들 내외와 함께 감상하며 부자가 모처럼 한목소리를 냈습니다.

역대급 콘서트였다고, 보기를 잘했다고.

사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보았는데 볼수록 깊게 빠지는 겁니다.

뭐든지 해주고 싶은 손자 손녀가 옥상에 올라가 탁구 치며 놀자고 성화를 부리는데도 뿌리치고 넋 잃고 봤으니 말입니다.

그만큼 잘 기획된 콘서트였고 볼거리 풍성한 공연이었습니다.

67세의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찬조출연한 양동근, 씨엔블루 정용화, 잔나비 최정훈, 포르테 디 콰트로 등 후배 가수들과의 협업 무대까지 열정적으로 잘 소화했습니다. 주연과 조연이 더불어 빛나는 감동의 무대로 승화시켰습니다.

1000여명의 언택트 관객들의 환호와 리액션이 과도해 산만했다는 옥에 티는 있었지만 200명의 합창단과 100명의 안무팀에 스태프들까지 더해 900여명이 전 과정에 혼연일체가 되어 심수봉의 노래와 쇼의 완성도를 높여주었습니다.

특히 엔딩곡 `백만 송이 장미'를 부를 때 보여준 장미꽃잎과 몽환적인 붉은색으로 황홀하게 꾸민 무대 영상은 압권이었습니다.

과히 세계가 놀랄만한 양질의 화면 송출이었고 추석명절을 아름답게 수놓은 멋진 공연이었습니다.

하여 쇼 프로의 지평을 확장시킨 KBS 제작진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1978년 MBC 대학가요제에 출전해 자작곡 `그때 그 사람'을 불러 일약 스타가 된 심민경,

이후 어릴 때 스님이 지어준 법명인 심수봉으로 갈아입고 가수활동을 하다가 박정희 대통령 시해현장 동석으로 얻은 트라우마와 그로 인한 결혼생활의 파국 등 많은 우여곡절을 딛고 오뚝이처럼 일어선 민들레 같은 가수 심수봉.

공연 중 흘린 눈물이 그녀의 지난 아픈 생채기들을 말끔히 씻어내는 성수이기를, 불후의 명곡 제조기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기를 빌고 빌었습니다.

심수봉 콘서트로 행복했던 추석명절 연휴도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심수봉의 아픔이 음악으로 치유되고 지나갔듯 이 또한 지나가리라 굳게 믿습니다.

그녀의 노래처럼 때는 바야흐로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입니다.



/시인·편집위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