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나태주와 직업(職業)
시인 나태주와 직업(職業)
  • 양철기 교육심리 박사·원남초 교장
  • 승인 2021.09.16 19: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심리학으로 보는 세상만사
양철기 교육심리 박사·원남초 교장
양철기 교육심리 박사·원남초 교장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친숙한 나태주(76세) 시인의 시이다. 문득 궁금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언어를 구사하는 시인 나태주의 직업은 무엇이었을까.



# 43년의 교사생활

시인은 1945년생으로 43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다 장기초등학교 교장으로 2007년 정년퇴임했다. 26세 때인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대숲 아래서'가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평범한 교사이자 시인인 그가 유명해진 건 20 12년 봄이었다. 계절마다 서울 교보생명빌딩에 내걸리는 `광화문 글판'에 이 시가 걸린 것이다. 시 `풀꽃'은 2005년 발간된 시집 `쬐끔은 보랏빛으로 물들 때'에 수록된 시로 7년 만에 세상 사람들에게 유명해졌다.

필자 또한 시인이 걸어갔던 직업을 가지고 있기에 교사 나태주의 직업생활이 궁금했다. 혹시 시 쓴다고 학생들에게 소홀하지는 않았을까? 본업은 시인이고 취미(?)로 학교에 근무하지는 않았을까?



# `풀꽃'의 탄생

우연히 EBS 방송에서 나태주 시인의 강연을 듣게 되었는데, 그는 시`풀꽃'의 배경을 담담하게 아래와 같이 풀어갔다.

“2002년 교장 시절 학생들은 원하는 동아리에 들어가 활동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동아리에도 속하고 싶지 않은 학생들이 있어요. 교사들에게 그런 학생들 있으면 교장실로 보내라고 했어요. 그런 아이들을 모아 학교 밖으로 나가 풀꽃을 그리게 됐죠. 저도 아이들과 같이 그렸어요. 저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지만 잘 그리지는 못해요. 다만 잘 그려보려고 노력해요. 한참 그림을 그리는데 한 아이가 `어떻게 하면 잘 그릴 수 있나요'라고 물었고 제가 이렇게 답했죠. 그 풀꽃을 자세히 보아야 하고 오랫동안 보아야 한단다.

그 아이는 알았다는 듯이 다시 돌아가 그림을 그리고 있었어요. 그 아이는 풀꽃을 자세히 오랫동안 보면서 정성스럽게 그리고 있었어요. 그 아이의 뒷모습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웠어요. 수업을 마치고 교장실로 돌아와 제가 아이에게 해주었던 말과 그 아이의 사랑스러웠던 모습으로 이 시를 쓰게 되었어요.(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직업이란

위의 강연에서 나태주의 프로다운 직업생활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학교에서 일하는 것이 그의 업(業)인 학생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한 편의 시가 된 것이었다. 아마 그는 교장으로서 열심히 행정적인 일도 했을 것이다. 예산도 많이 끌어와 학교시설도 개선했을 것이고, 교육청 일도 많이 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직업의 본질인 학생에 대한 가르침과 애정의 끈을 놓지 않고 주어진 업을 충실하게 꾸역꾸역 살아온 것이다.

직장은 다니지만 진정한 직업인으로 삶을 살아가기는 쉽지 않다. 누구에게나 자기개발과 취미생활은 선택이자 필수이다. 하지만 주어진 직장에서 직업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정년을 맞이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혹 그림 그리느라 잠이 부족해 아이들의 수업을 소홀히 하는 교사, 시 쓴다고 바빠 민원인 응대나 시민의 삶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공무원이 있다면, 30년 그림을 그리고 시를 써도 얼치기 화가나 시인 그 이상이 되기 어려울 것이다.

프로다운 직업인으로서의 삶, 프로다운 면사무소 주무관, 프로다운 학교 공무직원, 프로다운 위생 청소원, 프로다운 초등학교교장을 살아가고 또 퇴직을 한다면 비록 화가나 시인이 아니더라도 그런 삶 자체가 주변인들에게 감동과 용기 그리고 향기를 줄 것이다. 나태주 시인의`풀꽃'이 그랬던 것처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