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콜라주
브리콜라주
  • 양철기 교육심리 박사·원남초 교장
  • 승인 2021.09.02 17:4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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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으로 보는 세상만사
양철기 교육심리 박사·원남초 교장
양철기 교육심리 박사·원남초 교장

 

프랑스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 Levi-Strauss)는 남미 아마존의 마토 그로소 원주민들을 연구하던 중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정글에서 뭔가를 발견하면 언젠가 무언가에 도움이 될지 모른다고 생각해 습관적으로 자루에 담아 보관하는 관습이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이 `뭔지 잘 모르는 물건'이 나중에 부족을 위기에서 구하는 일이 있었다.

이렇게 주변에서 발견되는 `뭔지 잘 모르는 물건'을 비예정조화 차원에서 수집해 두었다가 여차 할 때 요긴하게 써먹는 능력(감각)을 레비스트로스는 `브리콜라주'라 명명했다. 현대에 와서는 예술, 문학, 철학, 경영 등의 영역에서 그 의미가 확장되어 `손에 닿는 어떠한 재료들이라도 가장 값지게 창조적이고 재치 있게 활용하는 기술'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 슬픈 열대

레비스트로스는 아마존 원주민들과 4년 동안의 생활을 통해 낸 저서 `슬픈 열대'에서 문화는 나라마다 다르긴 해도 더 우월하거나 열등하고 야만적인 문화는 없다고 단언했다. 그리고 원주민의 과거 식인풍습조차도 함부로 나쁘다고 매도할 수 없다고 했으며, 오히려 서구 근대 문명의 대규모 학살과 전쟁으로 빚어진 야만성과 잔인성을 비판했다. 이는 당시 서구중심주의와 인종주의 그리고 서구의 오만과 편견을 깨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문명의 사고'와 `미개의 사고'의 이분법을 거부하면서 미개의 사고는 문명의 사고보다 결코 열등하지 않은 야생의 사고로 이 야생의 사고는 일관된 질서가 존재하는 `구체의 과학'이라고 주장했다.



# 계명구도(鷄鳴狗盜)

계명구도, 닭 울음소리나 흉내 내고 개구멍으로 물건을 훔치는 것과 같은 변변치 못한 재주를 가진 사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중국 제(齊)나라의 맹상군(孟嘗君)은 인재 모으기를 즐겨 식객이 3000여 명이나 되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 눈에는 필요 없고 쓸모없어 보이는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라도 식객으로 거두어 들였다. 심지어 동물 목소리 흉내 잘 내는 사람, 작은 구멍을 빠져 다니며 도둑질 잘하는 사람, 문서 위조 잘하는 사람 등등을 식객으로 받아들였다. 참모들의 반대에도 언젠가는 쓸모가 있을 것이라며….

그런데 맹상군 일행이 진(秦)나라에서 모함에 빠져 죽음의 위기에 처했을 때 이들을 무사히 제나라로 탈출시킨 사람들은 다름 아닌 닭울음 흉내 낸 사람, 개구멍 잘 빠져나가 훔치는 사람, 신분증 위조 잘하는 사람 등이었다.



# 어머니

도회지에 사는 누나들이 가끔 고향에 오면 종종 어머니를 다그쳤다. “남은 음식은 이렇게 두지 말고 바로 버리고, 저런 물건들은 쌓아두지 말고…” 등등. 그리고 시골집을 대청소 한다.

누나들이 돌아간 후 어머니에게 차근차근 물어본다. 왜 저렇게 해놓고 사시냐고. 어머니도 차근차근 대답한다. 매번 어머니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고 사려 깊은 이유가 있었다. 라면 한 봉지 사려고 해도 3시간 이상 걸리는 산골 생활에서 터득한 어머니의 삶의 방식이고 지혜였다. 심지어 치매가 오는 상황 속에서도 어머니의 행동과 말씀 뒤에는 이해가 되는 명백한 이유가 있었다.

어머니보다 좀 더 배웠다고, 도회지에서 살았다고, 더 젊다고 누나들의 생각과 판단이 더 문명적이지는 않다. 심지어 옳은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는 브리콜라주와 2500년 전의 맹상군 그리고 고향의 늙으신 어머니를 연결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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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보권 2021-09-26 11:39:51
교장선생님, 브리콜라주를 여러 사례로 따뜻하게 인문학으로 풀어 설명해주셔서 재밌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