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온천 여행
한여름의 온천 여행
  • 이은일 수필가
  • 승인 2021.08.25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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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은일 수필가
이은일 수필가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욕조에 온천수를 받고 몸을 담그니 어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올 초부터 서울 집을 오가며 주말부부로 지내는 큰딸을 보러 어제 대전에 왔다. 마침 작은딸이 집에 왔기에 점심을 먹고 나서 옥수수랑 토마토를 싸 들고 함께 나선 거였다. 큰딸은 회사에서 마련해준 작은 오피스텔에서 지내고 있었다. 새로운 거리 두기 4단계로 셋이 식당에 갈 수가 없어서 저녁은 포장해 가지고 와서 먹기로 했다. 그런데 에어컨이 신통치가 않았다. 시장을 반찬 삼아 맛있게 다 먹을 동안에 방안은 조금도 시원해지질 않았다. 그래서 소화도 시킬 겸 산책을 다녀오기로 했다.

근처 한밭수목원으로 갔다.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하긴 요즘처럼 힘든 시기엔 가끔 공원이라도 나와야 숨통이 트이지. 동원東園 안으로 들어서자 장미원이 어둠 속에서 향기로 우리를 맞이했다. 조명으로 인해 그윽해진 산책길을 천천히 걸으며 여름밤과 함께 우리의 이야기도 깊어졌다. 나는 야경사진 속에 소중한 순간을 담아 추억으로 저장했다.

나가는 길에 놀이터를 발견한 딸들은 어린아이처럼 시소로 달려갔다. 양쪽에 앉아 페달을 돌리자 판이 돌기 시작하면서 시소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세게 밟을수록 더 빨리 움직였다. 환호성을 지르며 신나게 노는 모습이 마치 어릴 적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맞아, 예전에도 그랬었다. 연년생 딸들은 어딜 가든 이렇게 둘이라서 항상 심심하지 않았고, 싸울 때도 물론 있었지만 자매 없이 자란 나는 그것조차 부러웠었다.

때아닌 고강도 운동으로 출출해진 작은딸이 늦어진 김에 야식도 좀 먹고 아예 자고 가자고 했다. 그런데 에어컨이 문제였다. 고장이 난 건지 방은 계속 찜통이고, 리모컨을 만지면 조금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가 싶다가도 도로 마찬가지가 되었다. 시간이 늦어 선풍기를 살 수도 없었다. 큰딸은 내일 출근을 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셋이 잘 수 있는 다른 곳을 찾아봐야 할 것 같았다. 일단 짐을 챙겨 차에 탔다. 그다음부턴 일사천리, 나는 시동을 걸고 작은딸은 호텔을 찾아 예약하면서 동시에 큰딸이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찍었다. 그렇게 어젯밤 여기 온 것이다.

이 방에 처음 들어왔을 때 현관 거울에 비친 우리 모습은 가관이었다. 먹다 만 떡볶이까지 챙겼으니 손마다 봉지 하나씩 들고, 샤워하고 젖어 착 달라붙은 머리 하며, 잠옷 대용의 헐렁한 옷차림까지 안내대의 직원이 이 기묘한 세 모녀의 사연을 어떻게 상상했을지.

어쨌든 쾌적한 침대에서 기분 좋게 서걱거리는 이불을 덮고 누우니 행복했다. 양옆에서 서로 자기를 보라는 딸들 성화에 어느 쪽도 아닌 천장을 쳐다보며 두 자매가 주인공인 옛날이야기를 지어내던 때가 떠올랐다. 그랬던 꼬맹이들이 이젠 친구같이 의지가 되니 새삼 격세지감이 느껴졌다. 그러다 언제인지 모르게 잠이 들었다.

안 그래도 코로나 끝나면 셋이서 여행 한번 가려고 했는데, 이렇게 즉흥적이고 짧은 여행도 괜찮은 것 같다. 여행이 뭐 별거랴. 새롭게 보고 달라질 수 있으면 그게 바로 여행인 거지. 어찌 보면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다 여행이다. 이제 집에 돌아가면 우울하고 지친 마음 다 털어내고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누군가 여행이란 `어디로'가느냐보다는 `어떻게'돌아오는가가 중요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삶의 여행이 끝날 때 나는 어떻게 돌아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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