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 속의 인문학
계곡 속의 인문학
  • 박종선 충북문화재硏 기획연구팀장
  • 승인 2021.08.01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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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시선-땅과 사람들
박종선 충북문화재硏 기획연구팀장
박종선 충북문화재硏 기획연구팀장

 

무더운 여름, 빌딩 숲 속의 도시를 피해 산과 바다로 피서를 떠나는 휴가철이 다가왔다. 충북은 4면이 육지로 둘러싸인 내륙지역으로 바다로 피서를 가기보단 소백산, 월악산, 속리산, 민주지산 등 명산들이 만들어 놓은 천혜의 계곡으로 피서를 가는 일이 잦았다. 필자의 어린 시절에도 월악산의 송계계곡, 속리산의 화양계곡 등 여름이면 지역의 대표적인 계곡을 찾아다녔던 기억이 있다.

충북의 계곡들에는 특이한 점이 한가지 있는데, 다는 아니지만 계곡을 이루는 기암괴석에 옛 선인들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인명, 시조, 그림 등의 각자들이 남겨져 있다. 이는 대부분 `구곡(九曲)'문화에서부터 발현된 것으로 조선의 성리학과 관련이 있다.

조선시대 통치 이념으로 삼았던 성리학은 중국 남송의 주자가 만든 것으로 주자는 본인의 고향인 무이산(武夷山) 계곡 아홉 개의 절경을 성리학의 이념을 담아 구곡가(九曲歌)를 지었는데 이것이 바로 `구곡(九曲)'문화의 원류이다. 주자의 성리학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조선 초기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도 자신의 고향이나 살고 있는 곳의 아홉 개의 절경을 구곡으로 설정하여 구곡가를 만들었는데(도산구곡과 고산구곡), 이때부터 우리나라에서도 구곡이 설정되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구곡을 뽑자면 단연 우암 송시열의 `화양구곡'을 꼽을 수 있다. 2014년 구곡으로는 처음으로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지정된 화양구곡은 우암 선생이 20년간 머물렀던 화양계곡의 아홉 개 비경을 그의 제자들이 설정한 것으로 제1곡 경천벽(擎天壁), 제2곡 운영담(雲影潭), 제3곡 읍궁암(泣弓巖), 제4곡 금사담(金沙潭), 제5곡 첨성대(瞻星臺), 제6곡 능운대(雲臺), 제7곡 와룡암(臥龍巖), 제8곡 학소대(鶴巢臺), 제9곡 파곶(巴)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곡에는 곡의 명칭을 비롯하여 이곳을 다녀간 인물들, 성리학의 이념과 명나라와의 사대를 보여주는 각자들이 곳곳에 새겨져 있다. 화양구곡뿐만이 아니라 괴산 인근에 선유계곡, 갈은계곡 등에도 구곡이 설정되어 곡의 명칭을 비롯한 다양한 각자들이 새겨져 있다.

단양, 제천 지역의 계곡에도 구곡이 설정되어 있는데, 단양팔경 중의 하나인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 일대는 삼선구곡으로 설정되어 있다. 삼선구곡의 중선암에는 `사군강산 삼선수석(四郡江山 三仙水石)'이라고 각자가 크게 새겨져 있는데, 당시 단양, 영춘, 제천, 청풍 네 개 군의 강과 산이 빼어나다는 뜻으로, 그 밑에 `관찰사 윤헌주 서(觀察使 尹憲柱 書)'라고 새겨져 있어, 1717년(숙종 43) 충청도 관찰사를 역임했던 윤헌주가 이곳을 방문해 남긴 것이다. 이 밖에도 김홍도가 그림으로도 남긴 단양 팔경 중의 하나인 `사인암'도 운선구곡의 제7곡에 해당되며 여기에도 수 많은 인물들이 남긴 각자들이 남아 있다.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피서를 떠난 계곡에서 선인들이 남긴 각자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스마트폰으로 한문을 해석해보고 이곳을 다녀간 인물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검색도 해보면서 역사 속의 인물들과 시공간을 넘어 함께 하고 있다는 상상을 통해 조금 더 뜻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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