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다운 자비
참다운 자비
  • 방석영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7.22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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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
방석영 칼럼니스트
방석영 칼럼니스트

 

불교의 중요 핵심 교리 중 하나가 자비(慈悲)다.

자비는 타인을 사랑하고 가엽게 여기는 따듯한 마음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라는 자타불이(自他不二)의 큰 사랑과도 다름이 없다.

자비는 유교의 사단 중 첫 번째에 해당하는 인(仁) 즉, 주변 사람들을 가엽게 여기며 함께 아파하는 측은지심(惻隱之心)과도 일맥상통함을 알 수 있다.

불교의 열반경은 자비를 섭수(攝受) 자비와 절복(折伏) 자비로 나누어 설명한다.

섭수 자비는 어머니가 아이를 돌보듯, 상대를 포용하고 보살펴주는 자비다. 절복 자비는 아버지가 잘못을 저지른 아이들을 엄격하게 꾸짖어 올바른 사람이 되게 하는 `사랑의 매'와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보살도 및 이웃 사랑을 실천한다고 해서, 언제나 따듯한 마음으로 상대를 무조건 포용하고 보살피는 섭수 자비에 치우치면 진정한 자비가 아님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불교의 승만경은 “절복할 자는 절복하고, 섭수할 자는 섭수”하라는 가르침을 전한다.

언제나 밝고 따듯한 마음으로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는 빛의 역할인 섭수 자비뿐만 아니라, 상처가 난 자리에 따끔하게 소금을 뿌리듯 세상이 부패하는 일이 없도록, 소금의 역할을 하는 절복 자비도 크나큰 사랑이고 참다운 자비이기 때문이다.

세탁물도 부드럽게 비벼야 할 때가 있고, 필요하면 방망이로 강하게 팡팡 쳐서 세탁물에 낀 오염 물질을 말끔하게 빼내야 함은 너무나 당연하다.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해소하기 위함이 아닌 진정으로 자녀를 사랑한다면 얼마든지 채찍질도 할 수 있고, 필요하면 당근도 줄 수 있어야 참된 부모다.

마찬가지로 참다운 자비도, 섭수 자비와 절복 자비가 황금률의 조화를 이뤄야 한다.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돌보는 사랑도 빛의 역할과 소금의 역할이 적절한 조화를 이룰 때 진정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상대방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필요에 따라 베풀거나 꾸짖는 것은, 자비도 사랑도 아니다.

21세기 지구촌의 모든 인류가 깨어나, 그 어느 쪽으로도 치우침 없는 태극(太極)의 마음으로, 매 순간 물러나는 음(陰)과 나아가는 양(陽)이 온전한 조화를 이루는 중정무구(中正無垢)의 멋진 삶을 영위하길 소망한다.

우리 모두가 섭수 자비와 절복 자비를,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자유자재(自由自在)로 펼치는, 지혜롭고 성공적인 삶을 누릴 수 있기를 기원한다.

훌륭한 음악가가 높고 낮은 음(音)을 조화롭게 선용하듯, 뛰어난 화가가 밝은색과 어두운색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듯, 활인검(活人劍)과 살인도(殺人刀)를 자유자재로 쓰는 멋진 삶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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