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
여름날
  •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1.07.19 19: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여름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단연 더위일 것이다. 이 더위는 사람을 힘들게 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더위는 열매와 곡식을 만드는 원동력으로 사람에게 없어서는 안 될 은인 같은 존재이다. 그리고 더위는 사람들에게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조선(朝鮮)의 시인 김삼의당(金三宜堂)에게 여름 더위는 어떤 느낌으로 다가왔을까?

여름날(夏日)

日長窓外有薰風(일장창외유훈풍) 해는 길고 창 밖으로 뜨거운 바람 이는데
安石榴花個個紅(안석류화개개홍) 어찌 석류꽃은 가지마다 붉게 피었는지?
莫向門前投瓦石(막향문전투와석) 문밖을 향해 기왓돌을 던지지 말거라
黃鳥只在綠陰中(황조지재녹음중) 이유는 단지 꾀꼬리가 숲 그늘에 있다는 것뿐

시인은 남성 중심 사회였던 조선시대의 여성으로서 제약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더위가 절정에 이른 한여름임에도 불구하고, 당시로써는 별다른 피서법이 없기도 하고, 한 가정을 지켜내야 하는 아낙의 처지였기 때문에 집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시인이 대하는 여름 풍광은 다 집 안에서 발견된 것들이다.

더위의 모습도 마찬가지이다. 시인이 머문 곳은 집 안에서도 방 안이다. 방 안에서 들리고 보이는 것만으로 여름 풍광을 구성할 뿐이지만,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

해가 긴 것도 뜨거운 바람이 이는 것도 방에서 다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마당 석류나무에 붉은 꽃이 달린 것도 방에서 본 모습이다. 문밖 숲 속에 숨어 있는 꾀꼬리도 그 울음소리로 알아챈다.

시인이 방 안에서 느끼는 여름 풍광은 정적(靜的)이다. 이는 더위 탓이 클 것이다. 다만 더위에도 정적인 것을 참지 못하는 어린 아이들만 움직이는 모습을 보일 뿐이다.

시인은 어린 아이들에게 말한다. 뛰어노는 것은 좋은데, 꾀꼬리는 쫓지 말라고.

여름은 덥다. 더위에 삼라만상은 숨죽인다. 이 정적인 공간 속에 여름 풍광들이 각자의 모습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여름 더위에 순응하는 자연의 하나일 뿐, 밖에서 구경만 하는 관찰자가 결코 아니다.



/서원대 중국어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