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기(2)
밤새기(2)
  • 반영호 시인
  • 승인 2021.06.17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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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
반영호 시인
반영호 시인

 

새들의 잔치는 끝났다. 새들과 두 달간의 긴 싸움. 씨를 뿌리면 파먹고 파먹으면 또 뿌리기를 반복했고 끝내는 모종을 20판이나 사다가 심고서야 땅콩 밭이 이뤄졌다. 푸르게 변한 밭에는 땅콩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이제 새들의 잔치는 끝났다. 그동안 얼마나 새들에게 스트레스를 받았던지 집에서 기르던 30여 마리의 애완조를 처분했다. 앵무, 문조, 십자매, 잉꼬 등 애지중지하던 새들이었지만 `짹찍'소리만 들어도 신경이 날카로워져 결국 모두 내다 팔았다.

10여 년 동안 기르던 새들을 팔아버린 텅 빈 새장. 그런데 그 새장에 딱새부부가 들어와 살고 있다. 매년 처마 밑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쳤는데 그 자리를 제비들에게 빼앗겨 올해는 우리 집에서 딱새를 볼 수 없을 거로 생각했었다. 애완조가 없는 새장에 야생 딱새가 산다. 딱새는 기르던 애완조 만큼이나 예쁘다. 다만, 길들여지지 않는 딱새는 사람이 통제 불가능한 새다.

지난주 36세의 젊은 이준석이 제1야당의 대표가 되었다. 우리 헌정사에서 획기적인 일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한국 정치지형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큰 계기를 만들어낼 사건이다. 이준석은 정당인, 기업인으로 서울에서 출생하여 서울과학고를 2년 만에 조기 졸업한 뒤 카이스트에 입학해, 한 달 만에 미국 하버드대에 합격했다. 2억원에 이르는 수업료를 한국장학재단 장학금으로 해결했다. 대학생 시절부터 무료로 과외 봉사를 해 왔던 그는 졸업 후 저소득층 자녀를 위해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이라는 봉사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고, 교육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클라세 스튜디오'라는 벤처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이준석이 말하는 Issue 25 `어린놈이 정치를?'을 통해 정치인으로서 변혁의 정치판을 직접 체험한 경험을 바탕으로 젊은 청춘이 바라보는 정치, 언론, 교육, 경제 등 25가지 이슈로 한국 정치, 사회의 현실과 미래를 자신만의 시각으로 파헤쳤다. 총선과 대선의 향방과 그 결과가 가져올 사회적 변화를 조심스럽게 예측하고, 기성 정치인이나 진보 세력이 말하지 못한 한국 정치의 불편한 진실을 살펴봤다. 더불어 파워 트위터리안으로 활동하는 그가 바라본 SNS와 진정한 소통의 문제, `나꼼수'열풍에 대한 의견, 청년 정치 시대에 부족한 것은 무엇인지 등 최근 사회적 이슈로 부각된 주제에 관해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였다.

종종 TV를 통해 그의 능통한 말솜씨를 보와 왔었다. 사람의 언어구사는 그가 가진 지성의 반영이자, 그 뇌가 얼마나 더 복잡하게 설계되어 작동하는지를 가리켜주는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다. 뇌의 회로가 복잡하면 할수록 사용하는 언어가 다양해지고 또 새로운 문제에 대처하는 능력이 회로의 작동에 의해 그때그때 생겨난다. 정치인으로 그리고 국가의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은 무엇보다 이 점에서 남다른 점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조금 비틀어진 젠더의식을 갖고 있으나, 그가 가진 성능 좋은 뇌회로가 이 결함들을 조만간 충분히 수정해주리라고 믿어 본다.

나는 이준석만큼 정교하고 세련된 언어를 구사하는 정치인을 못 봤다. 과거 김종필 씨가 아주 특출한 면모를 보였으나, 그 후로는 살벌하고 원초적인 대결 속에서 언어의 품격을 지닌 풍모를 잘 보지 못했다. 조잡하고 저급한 언어구사에 의한 `깡패정치'는 한국 정치의 퇴행, 추락을 재촉하였다고 생각한다.

우리 새장의 새 주인이 된 딱새. 절대로 길들여지지 않을 딱새지만 내가 기르던 어느 새들보다도 예쁜 새. 땅콩 밭에서 새들에게 질려버렸던 나는 지금 새장의 문을 닫아 걸을까 말까를 고민하고 있다.

정치인을 철새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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