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착해라
아이, 착해라
  • 김정옥 수필가
  • 승인 2021.06.09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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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정옥 수필가
김정옥 수필가

 

현관 도어 록이 말썽이다. 여닫을 때마다 삐리릭삐리릭 하며 자꾸 소리를 낸다. 건전지를 교체했는데도 여전하니 배터리 문제가 아닌 모양이다. 결국 열쇠 수리공을 불렀다.

상호가 `착한 열쇠'다. 열쇠가 착한 것도 말이 안 되지만 업체 주인이 착하다는 것도 이상하다. 하지만 상호와 걸맞다고 생각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열쇠 수리공이 도어 록을 오래 써서 고장이 났으니 수리보다는 신제품으로 바꾸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기능도 좋고 사용하기도 편리하며 가격도 적당한 제품이라며 하나를 권한다. 그는 도어 록을 설치한 후에 사용법을 어찌나 자세히 설명해주는지 미안할 지경이었다. 친할머니 할아버지 대하듯 다정하다. 내겐 친절과 자상함이 착하다는 의미와 일맥상통했다.

착한 수리공에게 제품값을 카드 결제 아닌 현금으로 치르고 싶었다. 계좌를 알려 달라고 하니 할머니 계좌를 불러주는 것이 아닌가. 하루 중 마지막에 받는 돈을 할머니께 드린단다. 나도 모르게 “아이, 착해라”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가 다시 보였다. 한 치 건너 두 치라고 부모님도 아니고 할머니에게 그날 번 돈의 일부를 보낸다니, 어머니께 용돈을 드릴 때조차 손이 꼬부라들었던 내가 남부끄러웠다. 마음이 가는 데 물질이 가는 것이 정한 이치다. 돈을 드리는 것 하나만 봐도 할머니께 얼마나 마음을 다해 공경하는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두고두고 생각나는 착한 사람이다.

얼마 전 외출했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보도에 스티로폼 상자 하나가 나둥그러져 있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가고 있었는데 몇 걸음 앞서가던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남학생이 다시 돌아와서 그 스티로폼을 주워드는 것이 아닌가. 순간, 어쩌려고 그러나 하고 눈길로 계속 따라가니 아파트 분리수거장 쪽으로 간다. “아이, 착해라”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요즘 학생들이 다 먹은 빈 과자 봉지며 떡볶이 국물로 칠갑을 한 종이컵을 아무데나 버리는 것을 흔히 보았다. 그래서 남이 버린 것을 스스로 줍는 학생이 천연기념물이나 되는 듯 귀해 보였다.

아이들에게 부모와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잘하면 착하다고 했다. 한마디로 허튼짓하지 않고 행동이 올바름을 이른다. 착함은 규칙과 규범을 잘 지키고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행동을 하는 것이니 바른 인성과 상통한다.

착하다는 사람의 심성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런데 착하다가 사물이나 현상에까지 붙어 의미가 마구 뻗어나간다. 착한 소비, 착한 가격, 착한 여행, 착한 가게 등이다. 이때 착함은 사람들에게 이롭거나 유익하다는 뜻의 표현일 터이다. 어의 전성(轉成)의 일 순위라고까지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래도 저래도 착하다는 무조건 좋은 것이다.

`아이, 착해라'는 할머니가 손주들에게 제일 많이 쓰는 말이다. 손주는 밥 한술 더 먹는 것도 착하고 뒤스럭뒤스럭하며 노는 것도, 오사바사하며 말하는 것도 착하다. `착하다' 한마디로 모든 것이 통한다. 감기로 열이 나다가 내려도 착하고 겉 인사만 해도 착하니 착하지 않은 것이 없다. 할머니가 손주에게 착하다는 말은 `사랑한다, 예쁘다, 고맙다'는 또 다른 언어였다.

`아이, 착해라.'라는 말이 툭 툭 튀어나오는 걸 보니 열쇠 수리공이나 착한 학생이 아무래도 내 손주 같은 모양이다. 아무리 요즈음 착함을 바보 같음으로 본다지만 그들은 먼 훗날 `바른 세상'의 주춧돌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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