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심가 이야기
단심가 이야기
  • 이창수 시인
  • 승인 2021.05.19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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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창수 시인
이창수 시인

 

고구려 문자왕의 태자는 본명이 흥안興安이다, 서기497년 7월에 태자에 책봉된 후 상인 행색으로 전국을 여행하며 백성 살펴보기를 좋아했다.

고토인 개백현(지금의 한강 북 고양. 행주 땅)을 둘러보던 중 백제정찰병을 피해 그 지방장자 한씨의 장원에 몰래 숨어들었다가 절세미녀인 한씨의 딸 주珠를 만나게 되고 서로 사랑하게 된다. 정을 통하여 부부되기로 약속 하고 고구려 태자임을 밝힌 후 “귀국하여 대군을 이끌고 와서 그대를 맞이하겠다”고는 도망쳐 귀국했다.

서기 519년 문자왕이 죽고 태자가 22대 안장왕이 되어 장수들을 보내 백제를 쳤으나 번번이 패한다. 밀정을 통해 개백의 상황을 파악하는 왕은 속이 타들어간다. 왕이 장수들에게 조서를 내려 개백을 치고 한주를 구해오는 자에게 천금과 만호후를 걸어도 응모자가 없다,

개백의 백제태수는 한주가 미인이라는 소문을 듣고 부모에게 청혼하니 부모는 동의하고 한주가 거절한다. 부모의 강박과 태수의 진노를 사서 닦달을 받으니 한주가 “제가 이미 정을 준 남자가 있습니다, 멀리 나가 돌아오지 못하고 있어 그 생사 여부나 알아본 뒤 결혼을 말 하겠습니다”하니 백제태수가 “어찌해서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느냐 그는 틀림없이 고구려 간자이므로 네가 말을 못하는 게 아니냐”며 “적국의 간자와 통하였으니 너는 죽어도 죄가 남을 것이다”며 한주를 옥에 가두고 죽이겠다고 어르고 달랬으나 듣지 않는다.

한주가 개백현의 백제 옥에서 죽기로 결심하고 단심가를 지어 노래하니 “죽어죽어 일백 번 다시 죽어 백골이 진토 되고 넋이야 있든 없든 임 향한 일편단심 가살 줄이 있으랴”하니(조선 상고사-안장왕의 연애전쟁) 듣는 이 마다 눈물을 흘렸다. 백제 태수는 주의 뜻을 돌릴 수 없음을 알고 죽이기로 했다.

안장왕의 친여동생 안학은 미색이 뛰어나고 장군 을밀과 서로 좋아하는 사이였다. 을밀의 문벌이 한미하여 왕의 허락을 받지 못하자 을밀이 병을 핑계로 집에서 쉬고 있다가 왕의 조서를 듣고 나아가 다짐을 받는다. “신이 안학을 사랑함이 대왕께서 한주를 사랑하심과 마찬가지입니다. 신의 소원대로 해주시면 신 또한 대왕의 소원대로 한주를 모셔 오겠나이다”하니 왕이 하늘을 가리켜 맹세하고 을밀의 청을 허락한다. 을밀이 해군 5000을 거느리고 먼저 떠나며 왕에게 대병을 거느리고 육로로 오라하고 해로로 가서 결사대 20명을 개백태수 생일잔치에 눈치채지 못하게 잠입시켰다.

태수가 “오늘이 내 생일이다 오늘 너를 죽이기로 했으나 네가 마음을 돌린다면 너를 살려줄 것이다. 그러면 오늘이 네 생일이 될 것이다”하니, 한주가 대답한다 “태수가 주의 뜻을 빼앗지 않는다면 오늘이 태수의 생일이 되겠지만, 그러지 않으면 태수의 생일이 곧 주의 죽는 날이 될 것이며, 주의 생일이면 태수가 죽는 날이 될 것입니다”

태수가 그 말을 듣고 즉시 사형을 집행하라고 명령을 내리자 잠입한 을밀의 부하 20명이 연회석에 섞여 있다 급습하여 태수를 죽이고 “고구려군 10만이 이미 입성했다”고 외치자 성안이 온통 소란해졌다.

을밀이 군사를 몰고 성에 들어가 옥을 부숴 한주를 구하고 한강 일대의 성읍을 쳐 항복 받으니 고구려는 이 싸움으로 한강 이북의 고토와 강화도까지 회복했다.

훗날 정몽주가 선죽교에서 죽기 전에 이 단심가를 읊어 자신의 뜻을 확고하게 하고 철퇴를 맞으니 만고의 충신이 되고 많은 사람에 회자되어 단심가를 정몽주가 쓴 것으로 와전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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