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기연 수필가
  • 승인 2020.11.02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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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한기연 수필가
한기연 수필가

 

늦은 밤 하루의 피곤함을 날려 버릴 정도로 기분 좋게 귀가한다. 오늘 문우들과 함께 본 영화는 통쾌했다. 올해 여성 소모임 사업으로 `페미니즘 관련 영화 보기'를 다섯 명이 함께 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를 기준으로 관람할 예정이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잠시 미뤄뒀다가 이번 달에 두 편을 보게 됐다.

지난번에는 장애인과 가출 청소년의 우정을 두고 일어나는 일들을 담은 <돌멩이>를 봤다. 여덟 살 지능의 몸만 어른인 주인공 석구는 지적장애는 있지만 큰 문제없이 마을 사람들과도 잘 지내고 착하게 살아왔다. 그런데 가출소녀 은지를 만나면서 우정을 나누고 친구가 되지만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고립된다.

정지된 화면처럼 석구가 은지의 옷을 벗기는 장면은 그 사건의 진실을 관객이 알 수 있을 정도로 설명이 되었다. 그러나 그 장면을 목격한 쉼터 선생님의 믿음은 확고했고 단편적인 사실만으로 석구는 아동 성추행범이 된다. 그 믿음이 마지막에서는 `아닐 수도 있다'라는 흔들리는 눈빛을 내비치기도 했지만, 세상의 편견과 불신은 깊었다. 한편으로는 쉼터 선생님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석구가 오랫동안 인연을 맺었던 친구며 마을 사람들이 등을 돌리고 그의 세계가 무너지면서 스스로도 좌절한다.

석구가 물수제비를 뜨며 저수지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던 마지막 장면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이 영화의 매개체로 보이는 `돌멩이'는 여러 곳에 등장한다. 아빠가 줬다는 돌멩이에 석구이름을 써서 선물로 준 은지의 마음을 전하는 도구가 되기도 하고, 은지의 등장으로 석구의 일상에 파문을 일으키기도 한다. 사람들의 편견과 오해 속에서 굳게 닫힌 친구의 가게에 석구가 던진 돌멩이는 어떤 의미였을까? 보는 내내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했다. 관객입장에서는 진실이 보이는데 밝혀지지 않고 영화는 끝났다.

그가 만약 평범한 일반인이었다면 어땠을까? 자신을 위한 변명의 기회도 없이 한순간에 범죄자로 몰리고, 인생의 벼랑 끝으로 내몰릴 수 있었을까? 편견과 오해, 차별이 난무한 사회에서 각자가 믿는 신념이나 가치가 정말 진실인지도 되묻고 싶었다. 그러나 나 또한 마을 사람들과 다른 시선으로 석구를 대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대놓고 돌을 던지지 않을 뿐 마음속에 석구를 범죄자로 낙인찍어 두고 가두었을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도 쉽게 자리에서 일어설 수 없었다. 묵직한 돌멩이를 가슴에 얹고 가는 기분이었다.

오늘 본 영화는 코로나 위기 중에서 많은 인기를 끌고 있었으며, 상영 기간도 길었고 상영관도 한 극장의 두 관에서 할 정도였다. 지금까지 페미니즘 관련 영화는 기간도 짧았고, 상영관도 찾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주말에는 거의 편성되어 있지 않았다. 이번 <삼진그룹 영어 토익반>은 1990년대를 배경으로 실화에 기반에서 만들어졌다. 그 당시 일하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고등학교 졸업자에 대한 직장 내 차별을 실감 나게 그려 내고 있다. 내가 거쳐 온 과정이기에 감정이입이 더욱 격해졌고, 영화에 대한 몰입도도 높았다. 차별을 차별인지 모르고 지나온 시간들과 여성의 사회적 진출에 대한 목소리를 내면서 인식하게 된 차별에 대해 생각해 봤다.

거대한 공룡으로 비춰지는 기업의 부조리에 맞서 싸운 세 명의 당당한 여성들과 개미군단의 반격으로 반전을 이끌어 낸 영화는 흥미진진했다. <돌멩이>를 보고 나서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러나 아직도 석구가 저수지에 돌을 던져 만들던 물수제비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모든 인간은 행복할 권리가 있다'라는 진리가 공기처럼 우리 곁에 존재하리라는 믿음으로 내 가슴에 작은 돌 하나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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