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닮고 싶은 사람들
물을 닮고 싶은 사람들
  • 추주연 청주교육지원청
  • 승인 2020.06.16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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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추주연 청주교육지원청
추주연 청주교육지원청

 

한낮 햇볕으로 은근하게 덥혀져 나른한 오후, 교육지원청을 나서자 산들바람이 시원하다. 건물 바로 앞 카페에 가서 미리 주문해둔 커피와 차를 가져왔다. 오늘은 동료들과 함께하는 학습공동체 `상선약수'첫모임 날이다.

가요계에 `가수는 노래 제목 따라 간다'는 속설이 있다. 슬픈 제목의 노래를 부르면 비운을 겪고, 사랑에 빠지는 제목의 노래를 부르면 열애를 하게 된다는 이른바 `제목 운명론'이다.

“가수는 노래 따라간다고 `보이지 않는 사랑'을 불렀더니 사랑이 안 보이더군요. `그 후로 오랫동안'을 부르곤 오랫동안 사랑이 나타나지 않아 결혼을 못했네요.”가수 신승훈이 `우쥬 메리 미(Would you marry me)'를 결혼하고픈 마음에 전략적으로 만들었다며 한 말이다.

딱 그 마음이다. 노자(子)의 『도덕경』에 나오는 `상선약수(上善若水)'에서 모임의 이름을 가져온 것은 물을 닮고 싶은 바람을 담은 것이다.

양손 가득 커피와 차를 들고 작은 책방으로 향했다. 근무하는 사무실에서 한 층 더 올라가면 4층 복도 끝에 직원들이 쉴 수 있는 휴게실이 있고, 공간 깊숙이 안쪽에 작은 책방이 자리하고 있다. 책방에 들어서면 한쪽 벽 철제 책장에 가지런히 꽂힌 책들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예전에 대충 훑어보고는 언젠가 꼭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책이 여럿 눈에 띈다. 넓은 도서관에 가득한 온갖 책들보다 단칸 책장 속 책들의 존재감이 크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무엇보다 이곳이 마음에 드는 건 둘러앉아 이야기 나눌, 책장보다 더 커다란 책상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 둘 사람들이 모인다. 바쁜 일과를 정리하고 소박한 공간에 몇몇이 모였다. 누구 하나 예외 없이 마스크를 쓴데다 올해 새로운 구성원들과 첫 모임이라 서먹할 법도 한데 책상 위에 놓인 똑같은 책 덕분에 서로가 친근하다. 같은 책을 읽은 사람들끼리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무언가가 있다. 모임의 첫 책은 최근 베스트셀러로 골랐다. 요즘 사람들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는 제안에 다들 공감한 까닭이다.

누구의 진행이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책이 주는 감동 못지않게 책을 읽고 나누는 이야기가 흥미롭다. 책과 사람이 만나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 한바탕 수다가 풍성해진다. 책 이야기, 사는 이야기, 속마음 이야기, 교육 이야기가 오간다. 허심탄회한 성찰과 생각은 사람들 사이로 물처럼 흘러 바다처럼 넓어진다.

노자는 `상선약수'를 통해 물과 같은 모습의 삶을 제안한다.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낮은 곳에 머무는 물. 어느 그릇에도 담기는 융통성을 지니고, 부드러운 듯 강하며, 힘 있으면서 겸손하여 천지만물을 키우지만 내세우지 않는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작은 힘이 모여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물에서 배운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처럼 `상선약수'로 함께하며 물을 닮고 싶은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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