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 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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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5.18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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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바리 이야기
한덕현 <논설실장>

광주학살의 참혹한 실상은 사건 후 수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광주의 '광'자만 입에 올려도 붙잡혀가던 그 살벌한 시절을 기억하면 지금도 모골이 송연해진다. 하지만 그 핍박속에서도 광주의 진실을 알리려는 노력은 끊임없이 계속됐고, 초창기 그 주역은 이른바 지하언론이었다. 알만한 사람들 사이에서만 은밀히 나돌던 조악하기 그지없는 유인물, 사진, 필름, 그리고 구전(口傳) 등이 그나마 궁금증에 대한 갈증을 풀어준 것이다. 전 청원군수 오효진씨도 이런 맥락에서 광주를 대변하다가 투옥되는 등 고초를 겪었다.

일반인들이 광주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목격한 계기는 엉뚱하게도 87년 13대 대선이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이 피튀기는 대결을 벌이며 여의도 광장으로 군중 동원 경쟁을 벌일 때다. 서로 100만명이 모였느니, 150만이 모였느니 하며 촌스러운 숫자 다툼을 벌일 당시, DJ 유세장에 80년 5월의 광주모습이 수많은 사진으로 기습 전시된 것이다. 이를 처음 본 대중들은 물론 큰 충격을 받았다. 진압군에 얻어 터져 온몸에 피멍이 든 시민들의 일그러진 모습은 그나마 약과이고, 아예 머리가 깨지거나 으깨진 채 거리에 나뒹구는 사망자의 몰골은 말 그대로 목불인견이었다. 그날 많은 사람들이 후보의 연설엔 아랑곳않고 입을 꽉 다문 채 침묵한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 인간이 이렇게까지 잔인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몇 번이고 되물었을 것이다. 당연히 군인과 군대에 대한 이미지는 무서움과 공포 그 자체였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군문화는 늘 가깝게 있다. 직업과 활동에 있어 남녀의 구분이 없어진지가 오래지만 여전히 여성들이 감히 범접 못하는 영역이 하나 있다. 남자들의 군대 얘기다. 남자 둘만 모이면 여지없이 나오는 게 군대 얘기다. 시쳇말로 늙은이건 젊은이건 만났다 하면 군대시절의 영웅담이다. 게다가 그 과장이 얼마나 심한지 얘기를 곧이곧대로 듣다가는 대한민국 예비역 모두가 특수부대나 특공대 출신들로 보인다. 남자들이 평생 군대 얘기를 즐기는() 이유는 군생활이 그만큼 전체의 삶에 있어 각별히 인식되기 때문이다. 세상의 어떤 사상이나 이념도 이처럼 한 사람의 삶을 통해 완벽한 지속성과 일관성을 유지하지는 못한다. 결국 한국 남자들의 군대 얘기는 군과 군인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비중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비약인지 모르겠지만 군문화, 더 구체적으로 말해 군인은 한 나라의 정체성과도 직결된다. 북한을 처음 방문하는 남한 관광객들은 십중팔구 북에 대한 총체적 이미지를 출입국관리소에서 마주치는 북한 군인의 모습에서 찾아 낸다. 그들의 이색적인 언행과 폼이 남북체제에 대한 어떤 논리보다도 가깝게 다가오는 것이다. 요즘 금강산을 찾는 관광객들이 가장 실망하는 한가지 현상은 바로 해마다 변하는 북한 군인들의 모습이다. 금강산 사업 초기만 해도 힘이 잔뜩 들어간 째진 눈매와 싸늘한 말투, 그리고 앞뒤로 팔을 휘젓는 경직된 모습에서 북한의 실상을 체험했는데, 최근엔 이런 것들이 많이 사라졌다. 북한의 전향적인 변화를 실감하면서도 그래도 그 실체를 못보는 것같아 아쉬운 것이다.

그렇다. 군대와 군인은 그 나라의 자화상이다. 80년 5월 18일 광주의 만행을 저지른 군대가 반지성, 반문화, 무지, 몽매, 잔인, 폭력의 화신이었다면 지금은 아니다. 마침 논산의 육군훈련소에선 '추억의 육군훈련소 병영체험행사'가 열리고 있다. 그만큼 군(軍)이 이제 휴머니즘으로 무장하고 우리 품으로 다가 온 것이다. 해마다 5·18만 되면 우리의 군대와 군인은 숙명처럼 힘든 하루를 보냈다. 그래서 한마디 하겠다. 대한민국 군바리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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