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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5.15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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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처녀다
한 덕 현 <논설실장>

한나라당 경선을 둘러 싼 이명박 박근혜의 기싸움이 점입가경이다. 둘간의 반목은 당장 한나라당의 대권가도에 경고음을 울리고 있지만. 국민들에겐 오히려 색다른 긴장감을 안긴다. 바로 박근혜의 승부수를 의식하는 것이다. 예상대로 박근혜는 경선 논란이 불거지자 자택에 칩거하며 장고에 들어갔다. 경쟁자 이명박이 대중활동에 가속도를 붙이는 것과는 분명 다른 행보다.

박근혜에겐 다분히 승부사적 기질이 있다. 그리고 그 승부는 주로 단칼 요법이다. 대통령 탄핵의 부메랑으로 당이 존폐위기에 놓이자 한강 둔치에 천막당사를 차리고 운동화끈을 질끈 맨 것이나. 당권을 거머쥘 당시 정적과 경쟁자들의 끊임없은 어깃장에 항상 정면승부를 벌인 것 등이 이를 반증한다. 실제로 박근혜를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은 여성으로서의 이런 과단성에 원초적인 호감을 보인다. 박근혜는 평소 아버지 박정희에 대한 존경심을 공공연하게 드러냈다. 박정희 사후에 국민여론이 극도로 악화될 때도 그는 아버지에 대한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박근혜의 정치과정은 본질적으로 아버지 박정희의 그늘을 벗어나기가 어렵다. 박정희 연구가들은 그의 정치적 캐릭터에 대해 항상 두가지를 지적한다. 박정희가 칼의 문화에 익숙했다는 것과. 마키아벨리스트였다는 점이다. 찢어지게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현실과 기성질서에 대한 불만과 반항을 키우다가 일정시대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사 과정을 마치고 사무라이의 폭발적인 해결성에 취한 것이 전자라면. 그러면서 청와대의 어두운 집무실에서 혼자 단조의 단소를 불거나 심수봉을 안가로 불러 '그 때 그 사람'을 흥얼거린 나약함은 바로 후자의 마키아벨리즘에 해당될 것이다. 불행하게도 박근혜는 가정의 이러한 이중적 삶의 구조를 그대로 지켜보며 성장했다. 박정희와 육영수 사이에서 강온의 이율배반을 경험했고. 화려한 권력의 중심에서도 아버지와 어머니를 비명에 보내야 하는 아픔을 혼자 삭여야 했던 것이다.

박근혜가 정치꿈을 구체화하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 유학중 급거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신문을 보고 어머니의 죽음을 확인하고부터다. 그 때 20대의 예민한 감수성이 어떠했겠는가. 그녀는 곧바로 어머니를 대신해 퍼스트레이디를 자임했다. 주변 여건의 이러한 엇박자는 그 당사자에게 반드시 집요함을 키워 준다. 실제로 박근혜는 시장에서 아주머니한테 한 약속조차 꼼꼼히 적어 놓고 악착같이 이행하려 한다. 이것이 그를 수첩공주로 변질시켰다.

권력과 여인. 역사적으로 이 둘간의 관계는 평등하지 못했다. 남성중심의 권력 구조에서 여인들은 그 권력의 종속 내지 하위 개념으로 주로 치부됐고. 결국 권력과 여인하면 리더십이나 지도자론보다는 각종 스캔들이 먼저 떠올려지기 마련이었다. 때문에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 스스로 권력을 꿰찬 여인들은 비록 극소수이지만 언제나 출중하고 강했다. 천수를 다하며 권력욕의 화신으로 살다 간 서태후가 그랬고. 생전에 남성으로 취급되기를 바랐던 골다메이어. 그리고 철의 여제 마거릿 대처가 그랬다. 연초 이명박은 박근혜를 "결혼도 안한 여자". "애도 낳아보지 못한 사람" 쯤으로 폄하했다. 가정경제와 교육문제로 설전을 주고 받을 때의 일이다. 맞다! 박근혜는 처녀다. 그런데 한국에서 처녀의 잣대는 변해도 크게 변했다. 과거엔 우물가의 버드나무 뒤에 숨어 뭇 남성을 훔쳐 보는 홍조띤 얼굴의 앳된 처자가 처녀의 이미지였다면. 지금은 자기 삶에 당당한 커리어우먼이 미혼의 상징이 됐다.

그것도 결혼을 기피하는 독신의 경우엔 더 하다. 시쳇말로 주변에 걸릴 것이 없으니 쓰리고 아리고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박근혜의 선택. 그 승부수가 더욱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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