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마음
그 마음
  • 김용례 수필가
  • 승인 2019.05.30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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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용례 수필가
김용례 수필가

 

어쩌자고 사찰에 와서 물건을 탐하는가. 마음에 평화를 얻고 싶거든 모든 욕심을 내려놓으라는 부처님 말씀도 있거늘. 사람에게도 아니고 물질에 눈이 어두워 갈등을 하고 있는가.

집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사찰, 마야사에는 카페가 있다. 신도가 아니어도 차를 마시며 몇 시간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예쁜 공간이다. 카페 벽에는 여러 작품의 그림이 걸려 있다. 그림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많은 그림 중 하나가 내 눈에 박혔다. 나는 그 그림을 보러 카페로 가는 날도 있었다. 목이 빠지게 바라보고 돌아오려는데 스님이 꽃을 심고 계셨다. 그림의 출처를 여쭈어보았다. 집에 돌아와 아무리 인터넷을 뒤져도 나오질 않는다. 그다음에 또 보러 갔다. 스님께도 그림을 구입 해 달라는 부탁을 드렸다. 그날도 목이 뻐근하도록 그림을 보았다. 스님은 꽃밭에 계셨다. 나도 어디서 그런 용기가 아니 망언이 튀어나왔는지 놀랐다. “스님 저 그림 가져갈래요.”했다. 스님께서는 냉큼 그러라고 하신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카페 이 층으로 뛰어올라가 그림을 안고 내려왔다. 이 기회를 놓치면 그림이 연기처럼 사라지기라도 할 것 같아 총알처럼 뛰어갔다. 갖고 싶어 안달했던 그림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생각하니 아차 싶었다. 그림이 있던 빈자리에 다른 것을 먼저 구해놓고 가져와야 하는 거였다. 그럼에도, 다시 마야사로 가지 않았다.

어쩌자고 스님한테 그림을 내놓으라고 했을까. 작은 꽃, 강렬하지 않은 색채가 좋아 끌렸다.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혼자 상상의 날개를 펼쳤던 내 유년이 꽃 속에서 웃고 있는듯하다. 꼭 어떤 사람이 되겠다는 꿈도 갖지 못하고 막연히 시골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아이들과 논과 밭으로 돌아다니는 상상을 했던 것 같다. 그림을 탐하여 가져와 놓고는 왜 마음에 짐을 지고 사는지 알 수가 없다. 색감이 강렬했거나 꽃이 크거나 화려했다면 끌리지 않았을 것이다.

반드시 사람뿐만 아니라 물건도 인연인가보다. 우리 집 거실에 걸려 있는 그림은 일방적이고 억지로 맺은 인연이다. 그림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묵직하다. 여럿이 보면 좋을 걸 혼자 보겠다고 내 집에 걸었다. 나처럼 그림이 좋아서 카페에 오는 사람도 있을 텐데 말이다. 어떤 입양아의 말이 생각난다. 낳았다고 가족이 아니라 가족은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이 말로 나를 위로해 본다.

그림은 그리는 화가가 있고 감상하는 사람, 소장하는 사람이 있다. 사람들은 어느 구석이든 좋은 예술품이 있는 곳은 찾아간다. 예술은 사람을 부르는 손짓이다. 아무리 멀리 있어도 보고 싶었던 작품을 직접 보고 돌아올 때 벅찬 그 감동은 잊을 수가 없다. 그 감동은 마약 같아 한 번 그 느낌을 맛보면 끊을 수가 없다. 예술작품은 그런 것이다. 작가가 작품을 세상에 내놓으면 그 작품은 작가의 것이 아니라 보고 즐기는 사람 것이다.

마야사에서 가져와 우리 집 거실에 걸려 있는 그림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꽃의 정원이다. 이 그림이 좋아서 구입 하셨을 텐데 선뜻 떼어주신 스님의 마음, 원망하는 마음 없이 가족의 의미를 생각하는 입양아,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마음. 혼자 보겠다고 그림을 가져온 나, 그림의 꽃을 보며 그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본다.

봄도 지났다. 이제 여름이다. 스님은 사찰 곳곳에 꽃을 심으셨다. 온 천지가 꽃의 정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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