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회상
바람의 회상
  • 김희숙<수필가·산남유치원교사>
  • 승인 2015.12.10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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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김희숙

춥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온기가 그립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들어와 난로에 장작을 넣었다. 참나무가 난로 안에서 불그레한 불꽃을 뿜어내고 있다. 흔들의자에 앉아 나무 타는 타닥이는 소리를 듣는다. 고요를 가르며 타닥이는 소리가 좋다. 고요가 가득 내려앉은 일요일 오후 책을 읽다가 난로의 불빛을 째려보다가 창밖을 보다가를 반복한다.

창밖 나뭇가지가 회색으로 떨고 있다. 마당으로 나가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핸드폰 카메라에 담았다. 두 팔을 벌리고 불어오는 바람 가운데에도 서 본다. 싸늘한 바람이 내게로 무너진다. 팔랑이며 바람 속을 뛰어 부엌으로 간다. 아궁이에 불이 제법 붉게 타오르고 있다. 불이 어느 정도 잦아들기를 기다려서 냉장고 문을 연다. 고등어를 꺼내 석쇠에 올려 부엌으로 간다. 아궁이의 불씨를 끄집어 내 고등어가 든 석쇠를 올린다.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고등어가 지글거리며 익어간다. 나는 동그란 고등어의 눈에 내 눈을 맞춰본다. 아궁이의 매케한 연기 때문에 고등어와의 한판 눈싸움은 고등어의 승리로 돌아간다. 사위어가는 불기운을 온몸으로 받으며 고등어를 이리저리 뒤집는다. 어릴 적 엄마가 해주신 고등어의 향기가 코끝을 파고들며 기억을 끄집어낸다. 아궁이의 불씨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던 고등어 향기, 그리고 우리 엄마 향기, 그리고 아버지.

아버지는 유난히 고등어와 복숭아를 좋아하셨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사철 복숭아가 없는 날이 없었다. 복숭아가 나지 않는 계절에는 집에 늘 복숭아 통조림이 있었다. 내 기억 속의 아버지는 항상 복숭아를 후식으로 드셨다. 겨울에는 복숭아 통조림으로 입가심을 하셨다. 아버지가 드시면서 조금씩 나눠주시던 복숭아 통조림이 그 시절 내게는 늘 아쉬움의 대상이었다. 실컷 물리도록 먹고 싶었다. 달기만 하고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그 통조림이 그때는 왜 그리 맛있었던지. 아버지가 남기신 통조림 국물까지 다 먹고도 입을 쩝쩝거렸다.

고등어를 상에 얹은 늦은 점심을 먹는다. 밥을 뜨면서 거실 창으로 적막하게 흐르고 있는 하루를 본다. 고등어의 뼈가 앙상하게 드러나고 나는 수저를 놓았다. 비릿한 입 속의 향기를 커피로 덮을 요량이었다. 커피를 꺼내려 씽크대 서랍을 열었다. 복숭아 통조림이 빼곡히 쌓여 있다. 얼핏 보기에도 스무개는 넘어 보였다. 마트에 갈 때마다 습관적으로 복숭아 통조림을 카트에 담아 온 것이 어느덧 씽크대 한 칸을 가득 점령하고 있다. 어느 날부터인가 난 마트에 가면 어릴 적 추억에 끌려 복숭아 통조림을 산다. 그리고 집으로 와서는 씽크대 서랍에 넣었다. 서랍에 통조림이 늘어갈 때마다 내 가슴의 포만감도 늘었다.

나는 복숭아 통조림 하나를 꺼내 뚜껑을 땄다. 달덩이처럼 반짝이는 복숭아 조각을 꺼내 한입 베어 문다. 달디 단 과육이 입안에서 빙글빙글 돈다. 국물도 먹어 본다. 너무 달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복숭아 속에 반짝이는 듯하다. 이제 그만 사라고, 이제 그날은 추억으로 남겨두라고.

복숭아 통조림을 모두 정리한다. 그리고 커다란 봉투에 담아 찬바람 부는 마당으로 내 놓는다. 이제 다시는 복숭아 통조림을 사지 않으리라 바람 부는 날은 그냥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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