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처럼 수많은 사람 그중에
별처럼 수많은 사람 그중에
  • 김희숙<수필가·산남유치원교사>
  • 승인 2015.12.03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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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김희숙<수필가·산남유치원교사>

핸드폰이 울렸다. 이내 모르는 전화번호가 화면 위로 떠올랐다. 받지 않았다. 전화를 안 받자 이번엔 문자가 왔다. “희숙아 나 ○○야. 밤 11시 비행기로 떠나. 순간 나는 둔기로 얻어맞은 듯 멍했다. 그러다 이내 화가 치밀었다. 문자가 날아온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야~ 너 뭐야? 언제 왔어? 왜 이제 연락해?”라고 대뜸 소리를 쳤다. 그녀는 미안한 듯 말을 더듬었다. “계속 전화했는데 안 받더라.” 나는 애써 화를 누르며 말했다. “이거 네가 사용하던 전화번호 아니잖아?” “응 한국에 와서 잠깐 쓰는 번호야.” 나는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야?” 그녀의 고운 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나풀거렸다. “사창사거리. 너 어디 근무하니? 택시 타고 갈게.”

5년만이다. 5년 전 나는 그녀가 있는 필리핀에 갔었다. 그녀는 오지마을의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 낯선 아이들에게 학용품을 주고 약도 주고 아이들의 부모에게는 생필품도 나누어 주었다. 그런 그녀를 따라다니며 오지마을 사람들을 만났다. 학창시절 대학생 선교단체에서 활동하던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고 전도사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필리핀으로 선교하러 간다며 떠났다. 그리고 나는 가끔 필요한 물건들을 보내주곤 했다. 치안도 불안정한 더운 나라에서 헌신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나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그런 그녀가 느닷없이 나타났다.

그녀가 웃으며 걸어왔다. 코스모스처럼 하늘거리던 그녀가 어느덧 둥글둥글한 중년의 여인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대학 때 자주 갔던 곱창집을 찾았다. 그녀와 나는 식성이 비슷했다. 술도 못하면서 곱창, 닭발, 닭 내장 등 술안주로 적합한 음식을 즐겼다. 어느 날은 그녈 꼬드겨 수업을 빼먹은 채 곱창집에 가서 곱창을 실컷 먹었다. 그날 우리는 배탈이 나서 밤새 자취방 화장실을 들락거렸었다. 다음날 ‘샬롬’하며 인사하는 그녀에게 나는 ‘죽을 놈’이라고 대답했다. 수업을 안 가서 벌을 받은 것 같다며 기도하러 교회에 가자는 그녀에게 “너나 회개하고 하나님 잘 믿어라. 난 보이지 않는 것은 안 믿어. 가끔은 보이는 것도 안 믿어”라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나는 참 철이 없었고 그녀는 그때나 지금이나 너무나 착하고 성실했다. 우린 그날을 이야기하며 웃었다.

무슨 바람이 불어 왔느냐고 묻자 그녀는 희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파서 왔어. 검사를 했는데 이상이 없다네. 난 너무 아픈데 말야.” 그녀의 몸은 부풀어 있었다. 저녁을 먹고 약국에 갔다. 오지에서 필요한 연고를 샀다. 그리고 문구사에 들러 연필, 공책, 스티커, 볼펜 등을 골라주었다. 그녀는 고맙다며 아이들이 무척 좋아할거라 했다. 그녀는 오지마을에 봉사를 가는 것 말고도 집에 다섯명의 필리핀 대학생들을 돌보며 산다고 했다. 5년 전 내가 사주고 온 밥솥에 밥을 지어 먹는 필리핀 학생들을 볼 때마다 내 생각에 젖는다고.

그녀를 터미널에 내려주었다. 어둠 속으로 털털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대견하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노랫말 가사처럼 별처럼 수많은 사람이 있지만 그녀는 내 가슴 속에 유난히 크게 반짝이는 별이다. 내가 사는 동안 많은 생각의 강을 만나게 해주는 나룻배 같은 그녀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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