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아날로그가 그립다
가끔은 아날로그가 그립다
  • 이영숙 <시인>
  • 승인 2015.01.19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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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영숙 <시인>

만두소를 준비해서 홀로 계신 친정어머니를 찾아가는 길. 가마지구 아파트 건설용지 현장 앞에서 잠시 시선이 멈춘다. 진입로 한쪽에 자동차를 주차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낯설다. 부모를 잃은 고아처럼 두 눈에 눈물이 글썽거린다.

“학교 올 때 가마 타고 오니? 올 때 가마솥의 고소한 누룽지 좀 싸와라. 산속에 묻힌 시커먼 동네에서 가마니 쓰고 다니느라 용하다.”

‘가마’라는 낱말 때문에 이따금 친구들에게 들어온 놀림들이다. 가마(駕馬)는 세종대왕의 후손이 이곳을 낙향지로 정하고 들어올 때 농사짓는 사람들에게 방해될까 말에 멍에를 씌웠다고 하여 멍에 가(駕)와 말(馬)자의 훈을 쓴다. 그러한 가마리에 어느새 따개비처럼 달라붙은 도시민들이 원주민처럼 군림하고 있으니 격세지감이다. 

구부정한 허리로 논둑을 가다듬던 선친의 삽질 자리엔 스크린골프장이 들어서고 드나드는 차량을 피해가며 손수레 가득 폐지를 싣고 가는 친구 아버지는 많은 전답을 자식들 사업으로 다 내어주고 폐지를 모아 생계를 꾸려 가신다. 어느새 하얀 숲 이룬 백발의 노인이다. 시인에게 자연은 성전이며 고향은 종교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태어난 곳의 물질이미지를 잠재 태로 안고 살아간다. 글을 쓰는 이들의 영혼에서 풍화작용하며 바탕이 되는 기저는 고향의 물질이미지이다. 그래서 시를 쓰는 내내 개개비 둥지에 탁란한 뻐꾸기처럼 평생 고향 언저리를 배회하는지도 모른다.

고향은 사무치는 기다림과 그리움이 똬리처럼 자리하는 실존의 공간이다. 첫눈 같은 기다림과 풀물처럼 번지는 그리움을 탯줄처럼 이어가게 하는 정신의 자궁이다. 전쟁터 같은 도심에서 낚싯줄같이 팽팽한 겨울 추위를 견뎌야 하는 삶이지만 시인의 가슴엔 어머니와 고향의 밥타는 냄새가 있어서 인생의 겨울이 늘 실종된 가을과 봄 사이에 있다.

제 욕망을 감당하느라 닳아빠진 어깨가 지팡이에 의지해 뒤뚱거리면서도 무게 잡아야 하는 인생이지만 그래도 고향마루에 오르면 유년시절처럼 날 것의 자아가 된다. 그래서 간혹 삶이 비바체로 흐르면 아날로그로 역행한다.

걸어가도 30분 되는 거리에 고향 집이 있다. 마당 가운데 삭정이를 주워 쌓고 불을 지피면 어머니는 양푼 가득 감자를 꺼내 들고 오신다. 그것이 모녀가 주고받는 정서의 교감이며 사랑의 암호이다. 

장자처럼 소요유하는 대붕의 삶이 아니라 메추라기로 살며 좁은 새장에서 북적이는 소시민이지만 언제든 유목을 멈추고 찾아갈 수 있는 고향 집이 있어서 좋다. 시간을 맞추지 못해 대문 밖까지 진동하는 밥타는 냄새는 어머니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처럼 정겹다. 빈 감나무 가지에서 지저귀는 참새 떼의 소요도 옆집 친구처럼 다정하다. 

어머니와 단둘이 만두를 빚으며 재방송되는 어린 어머니의 시집살이 수난사를 듣는다. 만두 빚는 시간은 어머니의 한이 풀리는 시간이며 빈 우렁이가 된 어머니의 가슴에 정이 채워지는 시간이다. 

작은 바늘이 과속하며 달린다. 아쉽지만 다시 도심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도심에서 대보름달 부푸는 소리로 허기진 사유를 채워본 사람은 안다. 사람들 사이에서 상처받고 발톱까지 울어본 사람은 안다. 부모님 계시는 고향집 아날로그적 공간이 배부르고 따뜻한 아랫목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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