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고 미안해서
부끄럽고 미안해서
  • 이창옥 <수필가>
  • 승인 2014.04.28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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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창옥 <수필가>

살면서 요즘처럼 텔레비전을 켜고 끄기를 셀 수 없이 반복했던 적이 있었을까. 나만 특별하게 그런 것은 아닐 터였다. 아마도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같은 마음으로 그러했을 것이다. 꽃처럼 곱고 금쪽보다 귀한 아이들을 태운 배가 바다 한복판에 침몰했다는 소식을 접한 그 순간부터 모두가 텔레비전 뉴스에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을 것이다.

한 생명이라도 살아 돌아왔기를 기도하며 뉴스를 켰을 것이고, 차마 들어 삭혀낼 수 없는 참담한 소식에 절망하며 텔레비전 끄기를 반복했을 것이다.

이번 사고는 끔찍한 인재다. 세월호는 애당초 항구를 떠나 운항을 해서는 안 될 문제가 많은 배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어른들의 안전 불감증과 도덕성 상실이 빚어낸 이기심으로 아이들을 차디찬 바다 속으로 내몰았다.

꽃처럼 고운 아이들이 차가운 바다 속에서 얼마나 두렵고 무서워 공포에 떨었을까. 빨리 구조해 주기만을 빌고 빌었을 아이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먹먹한데 부모님들 심정은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자식이 울면 같이 울고, 웃으면 같이 웃게 되는 것이 부모다. 자식을 키워본 부모들은 알 것이다. 아이들이 세상의 전부인 것을……. 그런데 그들은 대체 어떻게 꽃처럼 곱고 금쪽보다 귀한 아이들을 침몰하는 배에 버려두고 탈출할 수 있었을까.

그들 중에 누군가는 분명 자식을 품에 안아 키웠을 부모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들이 품에 자식을 안았을 때 그 따스한 온기를 단 일초라도 생각했더라면 차마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순간 그들은 부모이기를, 사람이기를 스스로 포기한 것임이 분명하다. 아이들을 그 차가운 바다 속에 버려두고 나온 그들을 생각하면 같은 어른인 것이 부끄럽고 참담해서 견딜 수가 없다. 내가 어른인 것이 너무도 미안하고 미안해서 소식을 들을 때마다 고개를 들 수가 없다.

배가 침몰한지 어느새 열흘을 훌쩍 넘기고 말았다. 그동안 노란리본을 걸어 아이들이 돌아오기만을 부모 된 심정으로 기도했다. 그런데 300명이 넘는 실종자들 중에 단 한생명도 구해내지 못한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이 땅을 떠나고 싶다던 절규가 가슴을 친다.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자식을 품에 않은 부모가 아직 자식의 생사조차 알지 못한 부모들의 얼굴을 차마 미안해서 바라볼 수 없다던 기가 막힌 현실이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제는 어른들이 정신을 차려야 한다. 더 이상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며 큰소리치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세월호 침몰 후 속속 드러나는 비리들이 세월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온 국민은 알고 있을 것이다. 언제 어디서 또 이번 같은 참사가 벌어질지 가슴을 졸이는 일은 없어야 한다.

더 이상 이 땅에서 어른들의 후안무치한 행동으로 인해 피어나지 못하고 희생되는 아이들을 만들어서는 안 될 일이다. 내가 어른인 것이 부끄러워서, 아이들에 미안하다는 말도 염치가 없어 차마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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