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식이 마누라
삼식이 마누라
  • 이재성 <수필가>
  • 승인 2014.02.24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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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재성 <수필가>

사람이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한 하루 세 끼니를 챙겨 먹는 일이란 결코 업신여겨서는 안 될 일이다. 살기 위해 먹느냐, 먹기 위해 사느냐, 이런 해괴한 논리로 그 타당성을 가늠해서도 안 될 뿐 아니라 아무튼 먹어야 산다는 건 불변의 원칙일 뿐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건강을 위한다거나 장수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일일 일식을 하고 절식을 한다느니 하는 말은 내겐 가당치 않은 말이다.

주어진 세 끼니는 물론이려니와 새참까지 거르지 않고 챙겨 먹으니 시대와 역행하는 분수없는 짓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결코 식탐이 많아 게걸스러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란 걸 확실히 짚고 넘어가고는 싶다. 연유야 어찌 되었건 내 아내의 마음속에 나는 불명예스럽게도 근거 없는 '삼식'이란 또 다른 이름으로 새겨져 있는 모양이다. 설마하니 내가 감히 삼식이가 될 줄이야!

할망스런 정신 탓에 들고 다니던 전화기를 찾지 못해 애를 태우다 아내의 전화기로 내 번호를 누르려고 하니 투명한 전화기 액정에 기세도 등등하게 “삼식이”이란 놈이 떡 하니 버티고 있는 게 아닌가. 날벼락 같은 소리다. 번호를 두 번 세 번 확인해 봐도 내 번호가 맞긴 맞는데 말이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삼식이란, 빈둥거리며 하루 세끼를 다 찾아먹는 노년 남정네들을 비하하여 부인들이 지칭하는 말이라고 알고 있다. 내가 출처 불명의 삼식이가 되어 있다니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원초적 본능인 먹는 것을 가지고 미주알 고주알하는 것은 여간 치사스러운 게 아니거늘 뱃심도 두둑하게 삼식이 운운하며 텅 빈 사나이 가슴에 냉기까지 불어 넣는 행태는 지탄받아 마땅하다.

손, 발톱 다 닳고 이빨까지 빠진 맹수라 할지라도 목숨 걸고 제 가족 건사하던 시절이 있었건만 그 가상함은 어느새 잊혀지고 변방으로 밀려나 눈칫밥으로 연명해야 하는 노년의 남성들이 설 곳이 어디란 말인가?

'장발장'에게 빵 한 조각은 생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있을 수 없는 그 빵 한 조각으로 인생이 뒤바뀌고 기구한 운명으로 살아야 하지 않았는가. 아직은 팔팔한 노년의 남성들에게 일자리는 '장발장'의 빵 한 조각과 다름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일자리가 없어 빈둥거리지만 않더라도 삼식(三食)이가 아닌 호식(好食)이로 기를 좀 펼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이왕지사 말이 나왔으니 우리끼리 하는 얘기지만 별명을 붙여 주려거든 좀 낭만적인고 사나이 기개라도 살려 줄 수 있는 이름이면 얼마나 좋은가. 이를테면 '하늘같은 신랑' 이라든가 '내사랑 여보'도 좋겠고 아니면 무해무덕하게 그냥 '남편'이라 해도 누군들 나무랄 일이 있을까 싶다

아내가 내게 '삼식이'로 장군을 쳤을 때 난 내 전화기에 '삼식이 마누라'라고 멍군을 쳤다. 그리고는 서로 쳐다보며 배꼽 빠지게 웃는다. 격으로 따지자면 삼식이나 삼식이 마누라나 도토리 키재기지 별 수 있겠는가. 지금 삼식이 마누라는 내일 삼식이가 들에 가서 먹을 새참과 점심 준비하느라 발에 불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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