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2)
굴뚝(2)
  • 이재성 <수필가>
  • 승인 2013.10.15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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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재성 <수필가>

큰 애가 어렸을 때의 일이 불현듯 떠 오른다. 발발 거리며 돌아다니기 좋아하던 어린 녀석이 어느 날부터인가 오락실을 들락거리는 눈치를 보이기 시작하더니 그 횟수가 잦아지고 아예 유치원에서 돌아 와 집에 있을 시간이면 늘 오락실에 가 살곤 했다. 처음에는 재미있어 하고 게임을 잘 한다기에 제 적성인양 대견한 생각이 들어 기특하게 여겼다.

동전을 쥐어 주며 묵인해 주었다. 아비나 아들이나 철부지이기는 매 한가지였던 모양이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집안에 조그마한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화장대 위의 동전이 하나, 둘씩 없어졌다. 이제껏 없던 일이다. 불러 앉혀 놓고 호되게 닦달을 했다. 물론 종아리에 피 멍 자국이 서너 줄이나 남도록 혼줄을 냈다. 어린 자식이 땟국 물 가득한 얼굴로 어깨를 들썩이며 훌쩍이는 모습을 보니 측은하기도 한편으로는 가여운 생각이 들어 마음은 천근인 듯 무거웠다.

아비의 일방적인 다그침에 이 녀석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아마 변명의 기회라도 주고 싶어 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빠에게 하고 싶은 말 있으면 지금 다 해 봐” 설마 이 상황에서 제 녀석이 무슨 대꾸를 할까 싶은 형식적인 물음에 불과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건 단지 내 생각이었을 뿐이었다. 주저 없이 또박또박 한마디씩 반격을 해 오기 시작하는 것 아닌가. 안 가려고 해도 제 힘으로는 자제가 안 된다고 했다. 집에 와 있으면 천정에서 오락기가 정신을 차릴 수 없이 아른거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오락실로 가게 된다는 것이다. 저로서는 감당이 되지 않는 일에 대해서 왜 야단을 맞아야 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는 억울한 투다. 아하 그렇구나! 내가 처음 당구를 배울 때 그랬지! 잠자리에 들어서도 천정에 대고 쓰리쿠션을 쳤었지!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가슴 뭉클한 사나이들만의 공감대가 형성되는 순간이다. 꼭 한번 안아주고 지폐 한 장을 쥐어 주며 맘 편하게 오락실로 보냈다. 한 시간이나 지났을까, 밝게 웃으며 거스름돈 구천구백 원을 가지고 돌아 왔다. 그 후엔 제 스스로 그 길을 가지 않았다. 재미가 없어졌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아이의 생각을 물어 보고 귀담아 들어주길 잘 한 것 같다. 아들녀석은 요즘도 ‘친구 같은 아버지’라고 제 친구들에게 얘기하는 모양이다.

들어가는 곳이 있으면 나가는 곳이 있어야 하는 것이 만물의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한다. 그 기능의 우열은 가릴 수가 없다. 어느 것 하나 소홀하게 여긴다면 우리가 원하는 에너지는 얻을 수가 없는 것이다. 속에서 넘치는 힘이 클 수록 배출구의 역할은 지대하다 할 수 있다. 원동기의 흡입, 압축, 폭발, 배기의 원리에서 보듯 배출구의 기능은 엄연한 힘을 생성하는 과정 중의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굴뚝에 공을 들여 멋을 내고 치장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늘 후미진 곳에서 외부에 노출된 채 껑충한 모습으로 외로움을 느끼게 한다. 한낱 매캐한 연기나 뿜어내는 배출구에 대한 경솔한 업신여김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온 세상이 소통에 대한 절실함으로 들끓고 있다. “자 지금부터 우리 소통을 해 봅시다”정색을 하고 굳은 얼굴로 마주 앉아 핏대를 세운들 그게 과연 소통이 될 수 있을까? 소통하는 방법도 연구하고 배워야 할까 보다. 의무교육 기간만이라도 정규 과목으로 편성하는 방법은 어떨까.

뻥 뚫린 우리 집 굴뚝엔 지금 뽀얀 연기가 뭉실뭉실 춤을 추고 볼품없는 시커먼 무쇠난로 위엔 빨간 밤고구마가 먹음직스럽게 잘 익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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