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깽깽이축제
거지깽깽이축제
  • 변정순 <수필가>
  • 승인 2013.05.26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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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변정순 <수필가>

해마다 찔레꽃 피는 시절이 오면 설성공원에서 전국의 거지들을 모두 불러 모아 한바탕 색깔 있는 난장을 펼친다. 이름하여 음성품바축제다. 올해로 열네 번째를 맞았으니 완전히 전통이 되어가는 특색 있는 잔치로 거듭나고 있다.

품바는 심오한 뜻이 있는 단어다. 한자의 품(稟)자에서 유래되어 ‘주다’, ‘받다’의 의미를 갖고 있는데, ‘사랑을 베푼 자만이 희망을 가진다.’는 뜻을 품고 있는 우리 고유의 풍자와 해학이 함께 묻어있는 단어이다.

가진 것 없는 허(虛), 텅 빈 상태인 공(空), 도를 깨달은 상태에서의 겸허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처럼 격이 있고 아름다운 단어가 왜 빌어먹는 거지들의 대명사로 바뀌었을까. 또 아무 의미없이 각설이 타령의 추임새로 장단을 맞추기 위해 쓰였다고 하기도 하는데, 타령의 장단을 맞추고 흥을 돋우는 소리라 하여 조선 말기까지 ‘입장고’라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일제시대와 제2공화국, 제3공화국 시절 인심이 각박해지면서 품바가 비럭질하는 각설이의 대명사로 일반화 된 것이라니. 

거지가 가장 많은 곳이 음성이고, 거지가 가장 대접을 잘 받는 곳도 음성이다. 걸인들의 천국인 꽃동네가 음성에 있고, 전국의 거지란 거지는 다 모아서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가르친다. 음성이 본적지도 아니고, 음성에 친척도 없는 그런 사람들에게 음성사람들은 아낌없는 지원을 하는 천성이 착한 사람들이다.

거지성자로 칭송받고 있는 최귀동 할아버지는 금왕 읍내를 가로질러 흐르는 응천의 다리 밑에서 열여덟 거지들을 아무 조건 없이 거두었다. 같은 걸인이면서도 거동이 어렵고 몸이 아픈 거지들을 모아 같이 생활하면서 아름다운 성인의 길을 걸었다. 그분의 삶의 정신이 계승된 곳이 꽃동네다.  

올해는 더 푸짐한 품바가 진행 중이다. 삭막한 세상에 대하여 야유, 풍자, 해학, 무심, 허무, 영탄들을 엮어 던지며 걸쭉한 입담과 웃음으로 잔치마당을 열었다. 풍자와 해학으로 선과 지혜를 나타내고, 비애와 한을 사랑으로 포용하는 조상들의 지혜와 슬기를 배우는 장소다. 자기 성찰을 통한 나눔과 베품으로 음성을 하나로 꽁꽁 묶고 전국을 하나로 엮고 다문화를 하나로 엮고 있다.

품바에는 지역감정 따위는 아예 없다. 이를 위해서 스스로 걸인이 되는 사람들이 있다. 음성예총을 이끌어 가는 예술인들이 품바를 통하여 깽깽이 풀처럼 예쁜 꽃을 피웠다. 몇 달 전부터 준비하고 잔치가 열리니 스스로 거지깽깽이가 된다. 가지각색으로 염색된 옷에 군데군데 누더기로 꿰맨 옷을 걸치고 얼굴에는 숯 검댕이 칠과 화려한 분장을 하고 너도나도 참여하는 영락없는 거지들이다.

행사를 직접 기획하고 진행하는데 이제는 솜씨도 수준급이다. 처음 이천만원의 예산으로 전국품바축제 라는 간판을 걸고 재미를 엮어서 웃음을 주었던 축제가 군의 인력과 마인드와 예산도 한층 높여진 축제가 되었다. 입장권도 없는 누구나 다 와서 즐기고 구경할 수 있는 공간이다.

지금 이곳은 음성품바축제 역대수상자들이 왕중왕 경연대회를 펼치고 있다. 이들은 우리 조상들의 삶을 풍자와 해학으로 재조명하여 신명과 웃음을 선사해주는 연극을 공연하고 있다. 오늘 공연장은 더 많은 사람들로 붐벼 비좁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방 한 칸에서 오골 오골 우리 조상들이 어렵게 생활해야 했던 시절을 떠오르게 해주니 그런대로 매력을 느끼게 한다. 거지깽깽이어도 좋다. 음성품바축제는 사랑과 나눔, 봉사로 더 아름다운 사람, 정신문화축제로 자리매김하고자 계속 분장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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