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처럼
어머니처럼
  • 김은애 <수필가>
  • 승인 2013.05.23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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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은애 <수필가>

97세를 일기로 시어머님이 돌아가셨다. 장례식장 분위기는 천수를 누린 복 많은 어른이니 그렇게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는 분위기였다. 왕복 다섯 시간의 거리를 오가며 병문안 다니는 일이 버겁게 느껴졌을 때라 그 당시에는 나도 한쪽 어깨가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계절이 바뀌고 시간이 흐를수록 어머님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자식들에게 간섭 안하고 베풀기만 하셨던 분이다. 어려울 때 넌지시 도와주었을 뿐 생색내지 않고 그윽하게 바라만 보시던 분. 돌아가신 다음에 후회하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노력했었다. 아이들 어릴 때는 자주 찾아뵙고 며칠씩 자고 오기도 했었다. 그래서인지 두 아들은 할머니와 함께한 추억이 많다.

애들이 한창 개구쟁이였을 때 시댁에서 있었던 일이다. 바깥마당에서 공을 차고 노는 두 녀석을 어머니는 사랑방 마루 끝에 앉아서 꽃구경 하듯이 바라보고 계셨다. 녀석들은 놀다가 그만 질렸는지 안마당을 지나 마루로 기어 올라갔다. 장난감 칼을 들고 놀기 시작했다. 하얗고 팽팽한 새 문을 찢으면 어쩌나하고 가슴이 조마조마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창호지 여기저기에 구멍을 숭숭 뚫어 놓았다. 어머님 눈치를 보며 호되게 야단쳤다. 하지만 그 분은 “어이 잘한다. 어이 잘해. 얘들아 더 뚫어라 더 뚫어! 애들 실컷 놀게 내버려둬라. 문이야 새로 바르면 되지만 애들 크는 건 잠깐이다. 하라고 해도 안할 때가 있어. 너 이담에 두고 봐라. 내가 한 말 생각날 테니... ” 주름진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할머니의 얼굴을 본 녀석들은 대청마루가 꺼지게 뛰어 놀았다. 그날 밤 담요로 찬바람을 막고 자면서 생각했다. 나도 어머니처럼 매사에 너그러워야겠다고.

어렵게 사는 이웃 할머니나 찾아오는 걸인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할머니의 자애로운 모습을 자주 보아서인지 두 아들은 대학생 봉사활동 단체에서 기수 역할을 적극적으로 하였고 그 경험이 지금까지 사회생활 하는데 큰 보탬이 되었다고 두고두고 이야기한다.

어들이 된 그 애들이 오랜만에 할머니를 뵙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할머니가 왜 이렇게 작아 지셨지? 이제 우리가 할머니를 안아 드려야겠네.”

만날 때마다 두 아들에게 번갈아 안기면서 흐뭇해하시던 어머니의 자그마한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들들이 각자 다른 지역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바람에 우리 내외는 주말을 바쁘게 보냈다. 시댁에 가는 일이 뜸해졌고 가더라도 자고 오는 일이 별로 없었다. 주말을 아들과 함께 지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것이다. 시댁에 잠깐 들러 머물러 있다가 아들네 집으로 향하는 우리 내외의 뒷모습을 보며 서운해 하시던 모습이 가슴에 체기처럼 남아있어 후회가 된다.

새 식구가 들어오고 나도 어느덧 할머니가 되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말이 실감난다. 틈만 나면 고물거리는 손자의 동영상을 보며 미소 짓는다. 이 아이가 할머니 집에 와서 어떤 저지레를 하던지 위험한 짓이 아니라면 나도 가만히 보기만 하면서 활짝 웃어 주리라.

시댁 바로 뒷산이 어머니의 집이다. 양지 바른 곳이라 떼가 잘 살아나 묘 둥지가 어머니마음처럼 둥글고 예쁘다 . 그 곳에 가면 내게 말을 걸어오신다. “에미야! 손자가 그렇게 좋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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