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청산야할 ‘갑을(甲乙) 문화’
이제 청산야할 ‘갑을(甲乙) 문화’
  • 남경훈 기자
  • 승인 2013.05.07 2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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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남경훈 취재1팀장(부국장)

지난 3일 유튜브를 통해 남양유업 영업직원이 대리점주에게 물건을 받으라고 폭언을 하는 녹음파일이 공개되며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회사측은 해당 직원을 해고하고 대표이사 사과문을 게시했지만 소비자들의 불매운동이 벌어지는 등 파문이 커지는 모습이다. 주가는 연일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고, 검찰은 본사와 지점 사무실 3곳을 압수수색했다.

30대로 밝혀진 남양유업 영업사원은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점주에게 고압적 자세로 반말과 욕설을 퍼붓고 물량 떠넘기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 회사 대리점주들은 회사가 제품 떠넘기기 수준을 넘어 떡값과 임직원 퇴직위로금까지 요구했다는 제 2, 제 3의 녹취록을 갖고 있다고 한다. 약자에 해당하는 대리점주들을 얼마나 쥐어짰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갑을(甲乙) 문화’의 단면이 드러난 것이다.

무한 경쟁시대 우리 사회는 대기업이 갑이고 중소기업과 하청업체는 을인 분위기에 아주 익숙해져 있다. 공무원은 갑의 지위에 있고, 기업은 을의 위치에 있다. 강자가 군림하고 가진 자가 우월적인 지위에 있는 이런 갑을문화는 우리 사회에 고질병처럼 번져 있다고 여겨진다.

얼마전의 포스코 상무가 승무원을 폭행한 일명 ‘라면상무’사건이나 제과회사 회장이 서울시내 호텔에서 주차 문제로 호텔 직원의 뺨을 지갑으로 후려친‘제빵회장’ 사건도 똑같은 갑의 횡포다.

오죽했으면 도를 넘은 갑의 횡포에 ‘갑질’이라거나 ‘을사(乙死)조약’이라는 자조적인 표현이 생겨났겠나.

이번 사건은 남양유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유업종 뿐 아니라 잘 팔리는 소비재라면 제조사와 대리점 관계는 극단적인 갑을 관계인 경우가 허다하다. 이 관계를 이용해 재고를 떠넘기고, 시장을 확장하기도 한다. 시민들이 이 사건에 공분하는 이유는 힘없는 대리점 주인과 자영업자를 희생양 삼아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불공정한 상도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공생’의 사회적 책임을 제쳐둔 채 갑의 횡포를 통해 내 배만 불리겠다면 그 기업은 성장할 수 없다.

이런 가운데 LG화학 박진수 사장이 사내 임직원들에게 보낸 5월 CEO메시지가 관심을 끈다.

박 사장은 치열해지는 경쟁과 어려운 경제환경 속에서는 현실적으로 공정거래와 동반성장을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는 인식이 생기기 쉽지만, 이를 가장 경계해야 한다며 공정거래와 동반성장은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기본 원칙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박 사장은‘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는 말이 있듯이 우수한 협력회사가 없다면 우리가 시장을 선도하여 글로벌 일등기업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협력회사는 종속관계가 아닌 동반성장을 위한 사업파트너임을 명심하고, 객관적이고 공정한 기준에 따라 기회를 제공하고 대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갑과 을은 원래 양자가 합의한 계약 내용을 이행하는 대등한 주체다. 직장인의 80%가 자신을 을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73%가 갑이 주는 스트레스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조사결과가 나올 정도다. 그만큼 우리사회에 잘못된 갑을문화는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다.

‘라면상무’ 사건이후 “갑 노릇만 45년간 하다가 언젠가 터질 일이었다”는 포스코 간부의 자성의 목소리를 우리 모두 새겨들을 만하다. 차제에 우리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인 일그러진 갑을문화는 반듯시 청산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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