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켓 좀 팔아주시면 안될까요?
티켓 좀 팔아주시면 안될까요?
  • 오창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12.10.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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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오창근 <칼럼니스트>

일을 보고 몇 가지 상의할 일이 있어 잠시 청주노동인권센터에 들렀다. 노무사님이 다른 분과 상담 중이라 잠깐 기다렸다가 미뤄 둔 일을 상의하고 돌아서려는데 갑자기 노무사님이 "팀장님" 하며 불러 세웠다.

잠시 내 얼굴을 아무 말 없이 빤히 쳐다본다. 2초 남짓도 안 된 정적에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스쳐간다.

망설임, 침묵을 깨고 "팀장님! 티켓 좀 팔아 주면 안 될까요<" 예상 밖의 질문에 잠시 당황스러웠지만 "얼마 전에 단체에서 이선영 처장이 받은 걸로 알고 있는데요?" "아, 그랬군요? 그래도?" 뒷주머니에서 티켓 뭉치를 꺼내 세더니 열 장을 내 앞에 내밀었다.

티켓을 받아들고 사무실로 나오면서 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곳간을 열어보지 않아도 시민단체가 열악해서 일 년에 한 번 하는 후원회를 통해 마련된 기금으로 근근이 생활하는 것은 시민단체 활동가라면 누구나 아는 일이다. 그래서 단체마다 품앗이하듯 후원회 때 티켓을 팔아 주는 것은 인지상정처럼 통용되고 있다. 이상야릇한 감정의 끝은, 나를 불러 세워 놓고 잠시 정적이 흘렀던 찰나의 감정이었다.

내가 노무사님을 만난 것은 참여연대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수동 천주교성당에서 있었던 청주 이주민노동센터 후원의 밤이 아닌가 생각된다. 뒤늦게 시민운동에 뛰어들어 모든 것이 낯설고, 사람 얼굴 익히기도 어렵던 시절이었다.

옆에 앉은 김광복 회원이 "오 팀장님, 인사하세요. 이 분이 청주노동인권센터 조광복 노무삽니다. 처음 뵙나요?" 사회인권위원회를 맡다 보니 이름은 들었는데 회의에 참석하지 않아 얼굴을 뵌 것은 처음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조광복입니다," 악수를 건네는 표정이 해맑다는 느낌과 말투가 시원시원하다는 느낌이었다. "제가 자주 참석해야 하는데 바빠서 그러질 못했습니다. 앞으로 자주 참석하겠습니다. 하하하"

이후로 사회인권위 회의나 각종 기자회견 등 만날 기회가 셀 수 없이 많았다. 일에 대한 열정과 능력은 대단했다. 부탁하는 일을 좀처럼 거부한 적도 없을 정도로 정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과 술을 좋아하고 담배를 즐긴다는 공통점에 매력을 느꼈다.

깔끔하면서도 정돈된 논리를 갖춘 성명서를 볼 때면 경외감조차 들었다. 활동가 월급이 그저 그렇듯 100만 원 남�!� 월급을 받으며, 부당해고를 당한 노동자를 위해 성심껏 변론해 주고, 많은 노동자들이 이분의 도움으로 복직하는 과정을 보며 내심 그분의 능력에 감탄한 적도 많았다.

노동 상담을 주로 하지만 시민사회단체와의 유기적인 결합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모습을 보며 넓은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분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우리 단체 소식지에 이분의 회원탐방 기사를 쓴 적이 있다. 그때 처음 알았다. 국문과를 나왔다는 사실과 시를 좋아하고 문학에 대한 감수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발목까지 오는 양복바지에 푸른 계통의 남방, 약간 위쪽으로 조여 맨 허리띠, 조금은 촌스럽고 껑충한 느낌의 옷차림은 바뀌지 않았다.

상대방의 말에 시원스럽게 넣는 추임새 "아. 그렇군요."는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1주일에 책 한 권씩 읽고, 현재 하고 일과는 무관한 분야까지 섭렵한다는 말을 같이 근무하는 김현이 처장에게 들었다. 하루 16시간을 일하며 밤새는 일도 비일비재한 일 중독자지만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못해 망설인 정지된 시간에 난 이분의 사람 냄새에 흠뻑 빠졌다.

받아 쥔 티켓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람이 보인다. 노동자의 부당해고에 맞서 늘 군화 끈을 고쳐 매는 전투모드를 갖춘 투사지만, 말랑한 속살에 생채기도 잘 생기는 여린 사람, 싸늘한 가을 가슴 따뜻한 사람들의 십시일반 정이 모여 청주노동인권센터 후원회가 사람이 넘쳐나는 풍성한 잔치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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