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사를 만드는 사회
투사를 만드는 사회
  • 오창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12.08.08 21: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청논단
오창근 <칼럼니스트>

35도를 넘나드는 폭염 속에 200일 넘게 시청 앞에서 출근길 투쟁하는 택시 노동자의 모습을 보며 출근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택시 도급제 근절과 전액관리제를 시행하라는 요구에 청주시는 무응답으로 일관하다 급기야 불법도급 택시를 몰다 16세 어린 소녀가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19세의 무자격자가 택시를 몰다 낸 사고라는 소식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도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는 청주시는 책임 있는 자세로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뙤약볕에 서서 요구사항을 관철하기 위해 힘든 싸움을 하는 모습을 보며 투사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척박한 삶의 질곡 속에서 참고 억눌렸던 분노가 쏟아질 때 평범한 소시민은 투사의 모습으로 거듭난다.

작년 효성노인전문병원 간병인 노동자가 찾아와 어려운 상황을 설명하며 눈물로 호소할 때 그 모습은 지극히 나약한 중년을 넘은 여인들 모습 자체였다.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구호를 외치지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함마저 느껴졌다.

마이크를 쥐고 호소를 하지만 두서없는 장황한 이야기에 솔직히 감흥은 없었다. 시청 앞에 천막농성이 세워지고 하루도 빼놓지 않고 시청 앞에서 선전전을 진행하는 모습에서 그분들의 모습은 투사가 되어가고 있었다. 결연한 의지를 보이는 구호가 쏟아져 나오고 마이크를 쥐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말속엔 결연함마저 담겨 있었다.

장황한 말은 논리를 갖춰가고 왜 당신들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느냐는 항변과 왜 청주시는 해결 의지를 갖지 않느냐고 다그치는 말속엔 힘이 있었다. 그때 알았다.

투사는 상황이 만든다는 것을.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려 심드렁한 눈길을 보내는 시민도 만약 절박한 상황 앞에 선다면 투사로 거듭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평화시장에서 재단사로 열악한 노동환경에 눈을 뜨고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한 근로기준법을 지켜달라는 전태일 열사의 외침도 실상은 모순된 삶의 작은 균열에서 시작되었다.

그뿐이랴.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동학 농민전쟁에 참여한 민초의 삶도 그러하고, 신분해방을 부르짖은 최충헌의 사노(私奴)인 만적의 삶이 그러하였을 것이다.

또한, 백인에게 자리 양보를 하지 않은 이유로 체포되어 벌금 14달러를 낸 로사 파크스 여사의 행동이 1964년 민권법을 통과시켜 흑백분리를 종식시키는 기폭제가 된 것 또한 그 궤를 벗어나지 않는다.

'작고 평범한 일에서 시작된 용기가 세상을 바꾸는 큰 힘이 되었다.'라는 그의 말에서 지극히 평범한 사람의 행동 하나가 역사를 바꾸는 기폭제 역할을 할 수도 있음을 보여 주었다.

이후 투쟁을 승리로 이끈 간병 노동자들을 집회 현장에서 자주 볼 수 있었다. 넉넉한 웃음으로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을 격려하는 모습에서 사람이 어떻게 단련되고 변화되는지 여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

'정의롭지 못한 사회구조에서는 반드시 투사가 탄생한다.'라는 말을 귀담아들어야 할 이유다.

그러므로 소시민이 거리에 나와 구호를 외치게 하는 사회를 만들어선 안 된다.

"빛나는 미래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 설레던 열아홉 살의 소년이, 7년이 지난 지금 용서받을 수 없는 폭력배처럼 비난받게 된 것은 결코, 온순한 소년이 포악한 청년으로 성장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 시대가 '가장 온순한 인간들 중 가장 열렬한 투사를 만들어 내는' 부정한 시대이기 때문입니다."라고 서울대 프락치 사건으로 체포되어 쓴 유시민의 항소 이유서에 왜 평범한 사람들이 투사로 만들어지는지 잘 나타나 있다.

내일도 작열하는 태양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천막 속에서 승리를 달구는 택시 노동자의 삶을 지나치리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