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폭력의 민영화
국가폭력의 민영화
  • 연규민 <칼럼니스트>
  • 승인 2012.08.07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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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연규민 <칼럼니스트>

런던 올림픽이 열대야와 만나서 이래저래 잠 못 이루는 밤을 달래 준다. 홍명보호의 축구신화는 해가 중천에 떠오르도록 함성을 지르게 한다. 아침밥을 먹으라고 성화를 대는 부모도 아랑곳없이 밤을 지샌 젊은 아들들은 잠에 곯아 떨어졌다. 독재자들이 국민들의 눈과 귀를 다른 곳에 돌리고 장기집권을 획책하고 부정축재를 할 때 3S(Sex, Sports, Screen 또는 Speed) 정책을 편다더니 그럴만하다.

백골단이란 국가기관이 있었다. 어학사전에도 등장한다. “각종 시위를 진압하는 일을 담당하는 사복 차림의 경찰을 속되게 이르는 말. 은색 헬멧을 쓰고 시위를 진압한 데서 유래하였다.” 시위대의 앞줄에서 유난히 과격한 구호를 외치고 진압경찰을 자극하는 행동을 하는 젊은이들이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들이 백골단이었다는 증언은 흔하다. 1996년 연세대 사태 이후 백골단은 해체되었으며 전투경찰과 의무경찰도 직업 경찰관 기동대가 2009년 창설되면서 전투경찰은 2012년, 의무경찰은 2014년 모집을 중단하게 된다.

해체된 줄만 알았던 이 백골단이 부활했다. 요즘은 주로 용산참사에서 보듯 철거민들의 시위 진압, 쌍용차사태, 유성기업과 SJM 노조파괴 사건에서 노조원 폭행 등에 주로 등장한다. 우리가 경찰이 저런 일을 할 수 있나 하는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던 일들이 경찰이 아닌 민간폭력회사에 의해 저질러졌다. 위장취업을 해서 노조의 정보를 빼내거나 과격한 진압으로 노조원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토기몰이 하듯 몰거나, 노조원들이 모여 있는 곳에 소화기를 뿌리거나 곤봉으로 무차별 가격하는 등 참혹한 살상을 저질러 공포에 질리게 하는 일들을 서슴없이 한다. 이쯤 되면 이성을 가진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들은 단지 상상을 초월한 폭력만을 행사하여 노조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정권의 핵심세력을 경호하고, 실세 정당의 임원을 맡고, 경찰이나 수사기관과도 밀착되었다는 정황이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그들의 복장을 얼핏 보면 경찰과 다르지 않다. 이번 SJM사건에서 보면 경찰은 이들의 폭력을 방조하고 노조원들의 살려달라는 절규와 신고를 묵살하기 일쑤다. 결국 경찰의 도를 넘은 밀착이 경찰서장 경질에 이르게 되었다.

지난 해 초여름 유성기업에서 일어난 엄청난 용역조직의 폭력사건은 국가에 대한 희망을 잃게 한다. 직장폐쇄를 철회해 달라며 출근하려는 노조원들을 향해 야간에 전조등을 끈 채 자동차를 돌진해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이 사건은 제도권 언론에서 철저히 함구했다. 용역이나 이들을 사주한 범죄자들은 대수롭지 않은 사건처럼 처리되었다. 지금도 피해자들은 트라우마에 고통당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국제적 호경기에 시설투자와 연구개발에 소홀하던 대기업들은 엄청난 자금을 쌓아두고 오로지 땅 짚고 헤엄치기라는 공기업 민영화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건강보험도 민영화하려고 하고, 수돗물도 민영화, 잘 나가는 국제공항도 민영화하겠다는 미친 정부는 드디어 없어졌던 국가폭력까지도 부활시켜 민영화하고 있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국가의 기간이 되는 산업이나 역할을 민영화 하는 것은 주인을 무는 개를 키우는 것이다. 매트릭스나 아이로봇에 등장하는 인간의 편리를 위해 만든 로봇이 인간을 뛰어 넘어 인간을 정복하겠다고 나설 것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민영화 세력, 특히나 폭력회사를 만들어 사병처럼 이용해온 세력에 대한 응징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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