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개막식, 그 문화의 힘
올림픽 개막식, 그 문화의 힘
  • 정규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비엔날레부장>
  • 승인 2012.08.02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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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규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비엔날레부장>

심지어 그런 말까지 나온다. “올림픽 개막식은 이제 런던올림픽 이전과 이후로 완벽하게 구분될 것이다.”

4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올림픽은 지구촌 최대의 축제다. 훈련을 거듭하면서 피땀을 흘려 온 선수들의 열정도 열정이겠으나, 기간에 맞춰 열리는 각종 문화행사의 풍성함은 올림픽을 당대 축제의 절정을 뽐내는 자리로 만든다.

그 가운데 단연 백미는 올림픽 개막식이 될 것인데, 특히 이번 런던올림픽 개막식은 영국이 왜 문화강국인가를 여실히 보여줬다.

‘경이로운 영국’을 주제를 통해 전개된 이번 런던올림픽 개막식은 영화 <슬럼독밀리어네어>, <프레인스포팅>을 만든 감독 대니보일이 총감독을 맡았다.

영국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풀어내면서 국가와 민족, 종교, 이념, 피부색 등 지구촌에 상존하고 있는 차이와 구별을 극복하자는 의지를 담았다.

영국인들은, 그리고 대니보일은 올림픽 개막식을 통해 사회의 그늘진 곳을 다루는데도 전혀 주저하지 않았다. 올림픽 주경기장인 영국 런던의 리밸리 경기장에 돌연 우뚝 솟은 공장의 굴뚝에 매달린 어린 소년은 산업혁명이라는 변화와 영광 뒤에 숨겨진 어린 노동자의 애환과 절규, 그리고 비명을 감추지 않으면서 노동자 계급에 대한 존중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리고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는 영국인들의 자존심 세익스피어를 비롯해 가장 급진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롤링, 동화 피터팬과 메리포핀스를 통해 작가들의 무한한 상상력을 듬뿍 담아냈다.

그런 영국 특유의 스토리텔링을 시종일관 지탱해가면서 이야기의 전개를 이끌어 가는 것은 브리티시 팝이었다. 영국 팝의 전설이 되고 있는 롤링스톤스, 퀸, 섹스피스톨스 등의 노래를 통해 대중음악을 고전의 반열에 당당하게 올려놓기도 했다.

압권은 영국이 스스로를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국가 무상의료제도(NHS)를 올림픽개막식에 등장시키며 지구촌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거기에는 전 세계 어린이들을 설레게 했던 해리포터를 비롯해 피터팬 등 환상과 모험을 통해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며 모든 국민에게 골고루 나눠주는 최상의 복지제도를 구축했다는 자긍심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노동운동과 여성참정권, 이민자 등 상대적으로 소외되거나 약자일 수밖에 없는 계층들의 애환마저도 한데 버무린 이번 런던올림픽 개막식에는 나눔과 존중, 그리고 함께하는 화합의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영국 보수당의 한 정치인으로부터 ‘가장 좌파적인 올림픽 개막식’이라는 비판을 듣기도 했으나, 총감독 대니보일은 “(올림픽 개막식에 대한 구상은) 노동당 시절 시작됐지만 지금은 보수당 정권”이라고 전제하면서 “위원장이 간섭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줬다”고 말한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 영국의 문화정책 ‘팔걸이 원칙‘이 고스란히 지켜지고 있음을 강조하는 대목이다.

런던올림픽 개막식을 보면서 4년전 열렸던 베이징올림픽의 개막식을 회상한다. 중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 장이머우가 총감독을 맡았던 그 개막식은 세계를 긴장시킬 만큼 대국으로 떠오른 중국에 대한 아낌없는 자랑과 중국문화의 우월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물량공세를 쏟아 부었다.

지금도 눈에 선한 88 서울올림픽 개막식은 또 어떤가. 어린이를 등장시켜 고요함 속에 굴렁쇠를 굴리는 모습은 한국문화의 또 다른 진수를 보여주며 우리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대중음악을 현대문화의 새로운 고전으로 삼는데 주저하지 않으면서 문화다양성을 통해 ‘하나의 삶’을 추구하는 런던올림픽 개막식의 보편적 감동과는 분명 그 본질이 다르다.

나눔과 존중을 통한 복지의 중요성을 미래의 핵심 패러다임으로 제시한 올림픽 개막식. 그 무한한 상상력과 문화의 힘은 비틀즈 멤버 폴 매카트니가 부른 노래 ’헤이 주드’의 후렴 ‘나 나나 나나나나’를 계속 흥얼거리게 하는 마력으로 여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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