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기가마터 보존, 지금도 늦지 않았다
옹기가마터 보존, 지금도 늦지 않았다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2.07.23 22: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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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연지민 취재2팀(부장)

올해는 충북민속문화의 해다. 이 사업은 충북만의 민속문화를 보존하고 발굴하기 위해 충청북도와 국립민속박물관이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다. 충북만의 문화적 특성을 기록하고 보존하는데 큰 의미가 있는 사업이라 하겠다.

이를 위해 국비와 도비 등 30억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도는 29개 민속문화 계승·보존사업을 발표하고 도내 민속문화를 데이터베이스화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는 국가차원의 사업이지만 앞으로 사라질 지 모를 충북의 민속문화에 대해 다양하게 기록으로 남기겠다는 의지였다고 본다.

하지만 충북민속문화의 해 취지가 잘 반영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화려하게 축포만 쏘아 올리고 끝은 미적지근하게 처리되는 있는 것은 아닌지 싶다.

특히 충북의 무형문화재인 박재환 옹기장의 옹기가마터가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음에도 도나 기관에선 무관심하다. 옹기가마터가 있는 곳이 충북도의 추진하고 있는 오송제2생명과학단지 내에 편입된 것도 무관심하게 대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옹기장이 무형문화재이지 옹기가마터가 문화재는 아니라는 인식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무관심 속에는 문화재에 대한 인식부족도 역력하다. 점촌마을의 옹기가마터에 대해선 충북도 문화재위원회 위원이나 문화재보존 전문가들도 보존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대책이 미비하다.

정책 따로 현장 따로인 셈이다.

충북무형문화재인 박재환 옹기장이 운영하고 있는 옹기가마터는 청원 오송읍 봉산리에 있다. 지금은 오송역이 유치되면서 갑자기 각광받는 마을이 되었지만 불과 200년전만 해도 천주교 신자들이 몸을 숨기기 위해 찾아들었던 곳이다. 조선 관리들의 눈을 피해 살면서 생계를 잇기 위해 옹기를 만들어 연명한 곳이 바로 이 점촌마을이었다.

이곳에서 200년 역사가 늘 옹기와 함께했다.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곳에서 나고 자란 박 옹기장이 6대째 가업을 잇고 있고, 아들이 7대째 가업을 잇기 위해 옹기가마터에 자리잡았다. 선조들이 살아온 삶의 뿌리가 옹기장의 내력으로 이어져 옹기가마터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조들이 가난을 이겨내며 흙과 함께 버텨온 삶의 자리에서, 장인도 그렇게 70년 옹기장 외길을 걸으며 좁은 작업실을 지켜온 곳이 바로 옹기가마터다. 이처럼 특별한 의미를 지닌 터전이 개발이란 명분으로 사라질 처지에 내몰리고 만 것이다.

경제를 앞세운 개발이 최선인 시대는 지났다. 개발과 보존이 상충되긴 하지만 개발 속에 보존방안도 강구해야 한다고 본다.

역사성을 지닌 문화자원에 대해선 문화산업화로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오송제2생명과학단지는 그야말로 생명을 다루는 특화도시다. 이와 연관지으면 흙을 다루고 있는 박 옹기장의 작업장은 생명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 '흙이 곧 생명'이라는 문화콘텐츠도 가능하다.

이를 모토로 오송생명과학단지 내에 조성해야 할 공원을 옹기가마터를 중심으로 옹기공원으로 만들면 문화재 보존도 가능하다고 본다.

없는 것도 만드는 시대에 있는 것을 잘 활용한다면 충북만의 문화자원이 될 수 있다. 더구나 충북도무형문화재 옹기장을 보기 위해 먼길 마다 않고 찾아올 사람들은 전국에 많다.

충북민속문화의 해 사업이 어떠한 성과를 가져올지 몰라도 옹기가마터를 지켜내지 못한다면 절반의 실패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생명과 과학이라는 특화도시에서 만나는 옹기장의 모습, 생각만으로도 멋진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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