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용석 지우기
강용석 지우기
  • 정규호 기자
  • 승인 2012.02.23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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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규호 취재2팀장(부국장)

삼라만상은 이름을 얻고 나서야 비로소 그 존재가치를 인정받는다. '동의보감'에는 심지어 병조차도 이름이 있어야 병이 되고 그 치료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할 정도다.

오죽했으면 시인 김춘수는 '꽃'이라는 시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고 절창했겠는가.

지금이야 흔치 않지만 예전에는 사람에게 여러가지의 이름이 있었다. 아명과 본명, 호와 죽은 뒤 내려지는 시호는 물론 스님들에게 적용되는 속명과 법명, 심지어 태명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하다.

그중 최근 들어 아이 낳는 일이 드물어지면서 태명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으니 사람의 이름을 잉태되는 순간부터 소중하게 여긴다는 점에서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던가. 그만큼 사람의 이름은 어떨 때는 목숨만큼이나 소중한 것이다.

살다보면 참으로 오랫동안 잊지 않았으면 하는 소중한 이름이 있고, 그와는 정반대로 두번 다시는 떠올리기조차 싫은, 기억 속에서 깡그리 지워졌으면 하는 이름이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아들에 대한 병역비리 의혹을 제기했던 강용석 의원이 의원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준엄하게 법으로 유출 및 공개가 금지된 의료기록을 들먹이며 병역기피 의혹이 있다고 떠벌렸던 그는 이 나라의 국회의원이며, 누구보다도 법을 잘 알 것으로 여겨지는 변호사 신분이다.

서울시장은 공인이다. 따라서 그의 아들을 비롯한 가족들에게도 엄격한 도덕성이 요구됨은 마땅하다. 그러나 멀쩡한 개인의 신분인 서울시장의 아들에 대한 무차별적 인신공격과 명예훼손, 그리고 만천하에 공개된 개인 신상정보로 인한 인권침해는 그가 말한 '국민에게 약속한대로' 국회의원을 사퇴하는 것만으로는 치유될 수 없다.

재신검을 요구하면서 '친절한 원순씨'에게 모질게 상처를 냈던 저의는 뻔하지만 굳이 구체적으로 거론할 필요도 없다.

강용석, 그가 누구인가. 여성 아나운서를 비하하면서 성적 수치감과 모욕을 줌으로써 당시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제명돼 무소속 의원이 된 인물이 아닌가.

그리고 그는 아나운서들로부터 명예훼손죄로 고소당해 1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 받았으며, 현재 항소심에 계류중인 상태다. 그런데도 이번 19대 총선에 출마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듯하다.

강용석, 그가 국민 모두에게 남긴 상처는 의외로 크다. 앞뒤 가릴 것 없이 제기되는 의혹이 진실로 가려지기까지 당사자가 치러야할 고통은 참으로 잔인하다.

일단 색깔을 입히고 보자는 마녀사냥과 같은 피해가 진실이 밝혀질 때쯤이면 대개의 사람들은 그 시작이 어디에서, 무엇으로부터 파생됐는지는 까맣게 잊고 만다.

그 때쯤이면 의혹의 대상으로 지목된 개인의 인권은 갈기갈기 찢어지고,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이 낙인처럼 찍히고 마는 것이 세상사 아닌가.

그러니 비록 의원직을 사퇴하겠다고 공언했음에도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와 차이가 모호해지면서 진실을 찾아내고도 가슴 쓰릴 수밖에 없는 현실은 말 그대로 인간 존엄성에 도전하는 폭력의 또 다른 이름이다.

서울시장 박원순. 시민들에게 '친절한 원순씨'로 불리는 그는 용서와 관용을 말했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관용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시민들이 심판해 줄 것을 기대한다고도 했다.

역사는 기억할 것이다. 한 인간 개인의 인권이 철저하게 파괴되고 무너지는 이 순간에 우리는 어떤 눈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그리고 그 마녀사냥의 폐해를 역사는 똑똑히 기록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세상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강용석, 그의 이름을 기억에서 지우는 일이다. 가두어 두든 쫓아내든 그의 이름을 다시는 불러주지 않을 일이고, 이 글에서 그의 이름이 거론되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으면 싶다. 그는 절대 꽃이 될 수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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