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져 가는 생활도구 <15>
잊혀져 가는 생활도구 <15>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3.31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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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신
알면 알수록 신비로운 짚신

농경(農耕)사회가 농공(農工)사회로 바뀌고도 한동안 농촌의 서민들은 ‘의식주’, 즉 먹고 입고 생활하는 모든 것을 자체적으로 해결해야만 했다.

쌀이나 보리 등 먹는 곡식은 물론 목화를 심어 ‘무명’ 옷을 만들어 입었고, 삼(마:麻)을 심어 ‘삼베옷’을 만들었으며 집은 흙이나 수수대등을 이용해 지었는데 이보다 더 급한 것이 걸을 때 발을 보호해 주는 ‘신발’이었다.

여름철에나 농사일을 할때는 맨발로 다니기도 했으나 외출을 하거나 자갈길을 걷거나 겨울철 등에는 신발이 꼭 필요했다.

그래서 신발은 원료를 구하기 쉽고 빠른 시간안에 해결하기 위해 ‘짚신’이 발명됐는데, 공업화로 고무신이 만들어지기까지 짚신을 신었다.

짚신의 원리를 살펴보면 그 신비로움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짚신은 가을철 벼타작을 한뒤 튼튼한 볏짚을 다듬어 새끼를 꼬아 이를 발모양에 맞게 삼는(엮는) 것이다. 짚신은 짚의 껍질을 벗겨낸 속에 갓으로 만든 6날 짚신과 막신을 삼는 4날 짚신이 있다.

6날 짚신은 올이 곱고 촘촘해서 여자아이들에게 신기고 4날은 남녀노소 누구나 신고 다녔다.

짚신은 남자로 태어나면 자기신부터 삼아 신어야 하고 삼는 기술이 좋아지면 가족들의 신도 삼아줘야 한다.

짚신은 오른쪽 왼쪽 것이 따로 없지만 어린아이는 어린아이 발에 맞게 작은 신발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가족수가 많은 가장은 짚신 만드는 것도 벅찼다. 짚신은 가을철 벼를 타작한 뒤에 그 볏짚으로 새끼를 가느다랗게 한발(양팔을 크게 벌린 길이)쯤 꼰후 그것으로 4가닥의 날줄을 만들어 짚신의 기본틀을 갖춘뒤 줄과 줄 사이로 짚을 엮어 발바닥만한 크기로 짚신의 바닥을 삼고 양쪽가에 총을 만든다.

발뒤꿈치 쪽으로 차츰차츰 엮어가다가 마지막 단계에서 날두개를 뽑아 짚으로 감아 올리고 울을 만들어 총을 꿰어 두르면 아주 간편한 짚신이 삼아진다.

짚신은 남녀노소 구별이 없고 덩치나 발의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제작방법은 똑같다.

짚신은 삼(麻)껍질과 칡(葛)껍질을 섞어 삼기도 하는데 이것을 ‘미투리’라고 하며 궁중에서 신거나 양반들만 신는 전용물이기도 했다.

농촌사회에서 사람들은 틈만나면 짚신을 삼았는데 짚신은 누구나 삼을 수 있으나 전문으로 많이 만들어 팔기도 했다.

가을걷이가 끝나 한가해지면 여인들은 삼을 삼고 물레질을 하고 남정네들은 가족수대로 오랫동안 신을 짚신을 삼느라 쉴사이가 없었다. 짚신은 짚이 좋아야 하기 때문에 벼타작이 끝나면 좋은 짚을 따로 보관을 했다.

이제는 고무신은 접어두고 가죽구두며 몇십만원짜리 운동화가 지천인 세상에 살고 있지만 수십년전 먼길을 떠나거나 오랫동안 친척집에 갈때 괴나리 봇짐에 여러 켤레의 짚신을 매달아 가던 어렵던 시절의 풍물사진이 우리민족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것 같아 코끝이 찡할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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