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사망, 차분하게 내공을 쌓아야
김정일 사망, 차분하게 내공을 쌓아야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1.12.19 21: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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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영동)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죽음에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뇌졸중과 당뇨 등에 시달려온 그가 조만간 사망할 것이라는 예상이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현실이 되자 국제사회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김정일의 죽음이 그의 존재감을 더 부각시키는 모양새다. CNN은 어제 김정일을 '수수께끼 같은(enigmatic) 지도자였고, 한국과 미국에 자주 '가시(thorn) 같은 존재였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그는 죽어서도 날카로운 '가시'가 될 것 같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김정일의 죽음이 한국과 일본, 중국, 미국, 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국에 크리스마스의 악몽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물론 김의 사인이 군사행동이나 음모에 의한 것으로 밝혀질 경우를 전제한 분석이다. 타임은 향후 북한의 체제가 흔들려 비상한 사태가 발생할 경우 가져올 파괴력이 한반도에 국한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국제사회가 잔뜩 긴장해 추이를 지켜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서해 교전, 연평도 피격, 천안함 피폭 등의 악몽이 채 가시지 않은 우리 국민이 받은 충격과 우려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우리를 포함한 국제사회의 초미의 관심사는 급작스럽게 초래된 북한의 권력 공백이 어떻게 수습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의 사망이 김일성 주석의 사망보다 더 큰 파장을 가져올 것이라고 분석한다. 김정일은 20여년간의 후계 학습을 통해 김일성 사망으로 빚어진 공백을 신속하고 빈틈없이 메울 수 있었으나, 29세에 불과한 김정은은 세습 과정이 급조된 탓에 아직 권력의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실세들의 도전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조선중앙방송은 김 위원장의 사망을 발표하면서 "김정은 지도자의 영도를 충직하게 받들자"며 북의 후계체제를 공식화했다. 이 때문에 김 위원장 사망 후 북한이 내부 권력을 무리없이 김정은 중심으로 정리하는 데 성공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북이 발표한 장례위원 명단의 제일 앞줄에 김정은의 이름이 오른 것도 이 같은 추론을 뒷받침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한국은 물론 세계 최대 정보망을 갖춘 미국조차도 김 위원장이 죽은 지 이틀이 지났고, 조선중앙방송의 특별방송이 예고됐음에도 불구하고, 공식발표 전까지 그의 죽음을 감지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과 외부의 단절이 얼마나 두꺼운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결국 향후 북한의 권력구도가 어디로 흐를지에 대해서는 그들 스스로 결정하고 결행할 일이지, 외부의 입김이 끼어들 여지가 전혀 없다는 얘기다.다시 말해 우리를 포함한 국제사회가 아무리 북한의 장래를 걱정하고 조바심친다 해도 그들에게 미칠 영향은 미미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타임'도 지적했듯이 한반도를 둘러싼 관련국들의 조율과 공조이다. 특히 분단과 대립의 당사자인 우리는 냉철하면서도 차분한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지도자가 급사한 북한의 상황과는 비교도 되지 않지만 우리의 현재도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혼돈스러운 상태이다. 대통령은 측근과 친인척 비리에 여당의 개혁 돌풍까지 겹치며 리더십에 결정타를 맞았고,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정치권도 살아남기 위한 '이합집산'의 극심한 홍역을 치르는 중이다. 우선 김 위원장 장례식의 조문을 둘러싼 진보와 보수의 분쟁이 재연될 공산이 높아졌다. 야당과 시민단체가 조문단 파견을 주장하는 반면 일부 보수단체는 어림도 없다며 반대하고 나섰다. 김 위원장의 죽음과 북한의 불확실한 장래가 정치적 책략에 이용될 수도 있다. 벌써부터 정부와 여당이 '북풍'에 기대어 정치적 탈출구를 모색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김 위원장의 죽음은 남북관계를 더 경색시키는 악재가 될 수도, 관계 개선의 호재가 될 수도 있다. 낙관도 비관도 허용하지 않는 불확실한 상황이지만 분명한 것은 조만간 우리에게 중대한 선택을 해야 할 시점이 닥칠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어떤 충격파도 견딜 수 있는 내공 구축에 주력해야 하며, 그를 위해서는 원칙과 포용의 방식이 구사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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