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같은 일
소설 같은 일
  • 정규호 기자
  • 승인 2011.12.09 08: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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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규호/ 부국장(보은·옥천)

옛날 옛적에 어떤 나라의 조용하지도 한적하지도 않은 바닷가에 물고기 대신 이상한 물체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그 사람들은 그 이상한 물체가 살아있을 때에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누군가에게서 심하게 두들겨 맞은 듯 커다란 상처를 갖고 있는 그 시체는 놀랍게도 사람으로서 살아온 날이 얼마 되지 않은 고등학생이었습니다.

그 어린 학생이 죽기 전에 그 어떤 나라에는 국민의 대표를 뽑는 성스러운 의식이 있었고, 이상하게도 그 의식은 전혀 성스럽지 않은 채 구차하고 추악하게 타락된 모습으로 전락했다는 소문이 흉흉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한 표 한 표 소중하게 선거하는 날 투표소에 직접 찾아가서 권리를 행사해야 하는 원칙은 철저하게 무시됐고, 이미 특정 후보에게 기표된 투표용지가 선거 하루 전에 넣어졌다는 소문은 사실로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거세게 반발했고 군중을 이뤄 거리로 뛰쳐나와 거세게 항의했으며 그 ‘사람들’을 힘으로 억누르려 했던 나쁜 사람들은 결국 정권을 내놓고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그 정권을 ‘독재정권’이라고 불렀으며, 바닷가에서 발견된 어린 고등학생 같은 희생이 다시는 없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세월은 흘러 중간쯤의 옛날. 그 나라에서 가장 사람이 많이 모여 사는 거대도시 한복판에서 사람들의 대표를 뽑는 일이 다시 치러졌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일이 또다시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때도 이상한 일은 벌어졌습니다. 어둑어둑하게 땅거미가 짙어가던 시간이었으나 한 표 한 표 소중하게 신성한 의무이자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투표장에서의 행렬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약속된 시간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돌연 투표함이 옮겨지고, 그 기이한 행동을 목격한 사람들은 부정한 짓이 또다시 저질러지는 것으로 여겨 다시 군중을 이뤘습니다.

그러나 그 옛날 옛적과는 달리 이번에는 나쁜 무리들도 녹록지 않았습니다. 불이 타올랐고 사람들은 건물 옥상으로 내몰렸으며 강제로 흩어지고 붙잡혀 갔고 투표함은 지금까지 열리지 않은 채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파란색 함을 ‘판도라의 상자’로 부르고 있으며, 그 속에 들어있는 표는 모두 무효 처리된 채 여전히 의문투성이가 되고 있습니다.

다시 세월은 흐르고 흘러 사람들은 더욱 진화했고 이제 투표소로 가는 길을 사람에게 묻지 않고 기계에 물을 수 있을 정도로 똑똑해졌습니다.

그리고 정상적인 상황이 아닌 선거가 벌어졌고, 사람들은 예전 선거와는 달리 더 많이 투표를 하려고 벼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은 사람들이 더 많이 투표하는 것을 당연히 좋아할 줄 알았던 생각은 그들에게는 옳은 생각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나쁜 사람들은 골머리를 앓기 시작했고, 급기야 사람들이 제발로 걸어 나와 투표를 하는 일을 막을 수 있는 수작에 골몰했습니다.

사람들은 그 추악함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고, 어서 날이 밝아 투표장에 나갈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쁜 사람들은 그전보다 훨씬 영악해졌고 술수는 더욱 교묘해졌습니다. 이번에는 그 옛날 옛적과는 달리 나쁜 사람들의 편에 20대 젊은이들이 앞장섰으며, 그들은 사람들이 새날을 꿈꾸며 달콤한 잠에 빠져 들어 있을 때 호사스럽기 그지없는 술집에 모여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음모는 기계를 통해 기계를 공격함으로써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제대로 길을 찾지 못하게 꾸미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일이 그 몇몇 젊은이들에 의해 꾸며진 일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소설 같다고요. 아니 이 일은 지금 우리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 버젓이 일어난 일입니다. 새삼 부정과 독재라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단어가 자꾸 생각나는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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