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규장각 의궤 발견·반환 1등 공신
외규장각 의궤 발견·반환 1등 공신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1.11.23 21: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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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간 외교 협상 끝 2011년 성사
박병선 박사는 국내 여성유학비자 1호로 프랑스로 유학, 파리의 소르본 대학에서 석·박사를 마쳤다. 이후 1967년부터 1980년까지 프랑스 국립도서관 직원으로 근무하는 동안 '직지심체요절'과 더불어 외규장각 의궤 297권을 발견했다.

특히 '직지심체요절'을 발견한 박 박사는 독일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78년이나 앞선 금속활자로 인쇄된 책임을 증명하기 위해 중국과 일본의 인쇄술관련서를 섭렵하고 프랑스 내 대장간을 돌며 금속활자 인쇄술을 연구에 매진했다.

이 과정에서 사재를 털기도 하고 세 번의 화재까지 발생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 박 박사의 집요한 연구 결과의 성과로 1972년 '세계도서의 해'에 프랑스국립도서관 주최 '북스(BOOKS)' 전시회와 유럽 내 '동양학 학자대회'에서 발표되면서 학계에서도 '직지'를 인정하게 된다.

이는 다시'직지'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이라는 가치를 인정받아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는 결과를 얻었다. 한 사람의 집념과 열정이 담긴 노력 끝에 얻어진 '직지'의 영광은 청주의 자랑으로, 대한민국의 자랑으로 인정받는 놀라운 결과를 얻었다.

그런가 하면 1977년에는 파리국립도서관 베르사유 별관 창고에서 외규장각 도서를 찾아내는 성과도 올렸다. 190종 297권인 외규장각 도서는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이 2개월간 강화도 강화읍성에 주둔하면서 약탈해 간 우리의 문화재다. 하지만 프랑스도서관측은 한국에 외규장각을 알렸다는 이유로 박 박사를 사실상 해고했다.

외규장각 의궤가 세상에 드러나면서 한국에서는 외규장각 도서 반환운동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과 프랑스 국가간의 외교 협정을 끈질기게 외규장각 반환을 두고 협상을 별였고, 2011년에서야 비로소 반환이 성사됐다.

국가 문화재인 외규장각 의궤의 반환에 초석을 다진 박 박사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07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훈했다. 또 같은 해 여성의 사회적 역할 증진과 여성문화 창달에 기여한 공로로 제7회 비추미여성대상 특별상도 수상하기도 했다. 2009년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가 수여하는 제26회 가톨릭대상 특별상에 이어 지난달 외규장각 도서 반환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이 서훈됐다.

박 박사는 김규식 박사 일행의 파리 독립운동을 기리는 '병인년, 프랑스가 조선을 침노하다' 제2편을 집필하던 중 병세가 악화돼 타계했다. 후세들에 의해 완성돼야 하는 과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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