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덕의 실크로드 견문록 < 29 >
함영덕의 실크로드 견문록 < 29 >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6.14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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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도 쉬어가는 쓰찬성의 협곡
굽이돌며 하늘을 처다보니 산 능선 포개져 협곡 감싸고

▲구채구의 물을 보고나면 다른 물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골짜기마다 자리한 호수, 폭포, 시내와 어울리다보면 신선노름이 따로 없다. ⓒ함영덕 교수

두 교통반점이 위치한 건물에 티벳과 지우자이거우를 담당하는 패키지 여행사가 있어 함께 참여했다. 지우자이거우행 차편은 구하기가 힘들 뿐만 아니라 성수기라 방을 잡기도 어려웠다. 비용도 저렴하고 최대한 시간도 단축할 수 있어 중국인들과 3박 4일간(1인당 640元) 함께 여정에 올랐다.

버스는 시속 60km의 속도로 느리게 달리고 있다. 3시간 정도 달리자 바위산의 허리를 자르고 낸 좁은 2차로 도로가 나타났다. 굽이돌며 하늘을 쳐다 보니 아득한 산 능선이 겹겹이 포개져 하늘 벽처럼 협곡을 에워싸고 있다. 문득 당나라 시인 이태백의 시구가 떠올랐다. “촉나라로 가는 길은 하늘에 오르기보다 어렵다”는 그 말이 실감나는 전경이다.

산들이 많아서 물은 탁한 푸른빛을 띠고 있다. 산과 산이 첩첩이 포개지고 연이어진 이 벽지에서 사람이 산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논은 볼 수 없고, 옥수수 밭과 밭작물만 눈에 띈다. 쓰찬성 벽지 길은 아직도 포장되지 않은 도로를 닦고 있다. 차량이 막히고 엉키어 지체되는 구간마저 나타난다.

깎아지른 산비탈에 집 몇 채가 보이고 45도 이상의 비탈진 각도에서 농작물을 재배하는 것을 보니 인간의 생명력에 새삼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 차도는 버스 2대 정도 겨우 빠져나갈 수 있는 넓이며 차량 행렬은 끊임 없이 이어지고 있다. 구름도 지쳐 쉬어가는 쓰찬성의 계곡은 유비가 제갈공명의 천하 3분론을 받아들여 촉나라를 세울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천연요새의 지형을 이용한 덕분일 것이다.

청두의 13개 현을 지나가다 아바족이 사는 곳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하룻 밤을 호텔 침대에서 편안히 쉬고 난 후라 그런지 다리에 힘이 빠지고 뼈마디가 쑤시는 통증이 많이 사라졌다. 그러나 여전히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중국 전통음식에서 내 뿜는 향료냄새는 역겨울 뿐만 아니라 자꾸만 구토를 일으켰다. 식사 후 이 지방 아가씨들이 차를 대접하며 선전하는 차 시음 시간을 가졌다.

청두에서 삼국지연의 중심인물인 유비와 제갈공명의 묘가 있는 우허우츠(武侯詞)와 두보초당(杜甫草堂)을 보고 싶었지만 패키지 여행상품이라 개인적으로 방문할 수가 없어 약간의 아쉬움으로 남았다.

쏭판서 하룻밤 묵어

오후 6시 반쯤 쏭판에 도착했다. 12시간 동안 버스로 쓰찬성의 험준한 산악지역과 협곡을 달렸다. 강원도 골짜기는 이 루트에 비하면 산골이라고 말 할 수 없을 정도다. 마을 옆의 경사진 산 전체가 계단식 밭으로 퍽 인상적이다. 논농사는 볼 수가 없으나 좁은 협곡을 따라 작은 마을이 끊임없이 나타나는 인구 6만의 쏭판현이다. 청두로부터 335km 떨어져 있으며, 해발 2800m에 위치한 산간의 고성 마을로 1379년 명나라 때 세운 성문과 성벽의 일부가 당시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명나라때 세운 성문·성벽 남아 있어

여행자들이 쏭판을 많이 찾는 이유 중에 하나는 이곳에서 2시간 반 정도면 지우자이거우가 있고 63km 떨어진 곳에는 황룽(黃龍.황룡)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쏭판은 말타기 트레킹 코스를 개발하여 저렴한 비용으로 재미있게 인근의 관광지를 둘러 볼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여행객들이 이 투어에 참여한다.

쏭판을 찾는 많은 여행자가 대부분 신청하는 Horse Treks 투어는 선택의 폭이 다양하지만,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것은 2박 3일 코스로 말을 타고 6∼7시간 동안 4200m의 산을 넘어 황룽까지 다녀오는 투어이다. 말을 타고 황룽을 볼 수 있어 각광을 받는 코스다. 현재 쏭판에는 버스터미널 바로 옆에 전문 Horse Treks 여행사들이 있는데 조건은 비슷한 편으로 자신의 일정에 맞게 선택하는 것이 좋다. 패키지 투어에 합류하지 않았더라면 이 코스를 선택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갈 길이 워낙 멀고 장거리 여행을 하기에는 시간적 여유를 누릴 수가 없었다. 관광객들에게 권해보고 싶은 루트다.

장급 수준의 여관에 여정을 풀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감기가 나아지려는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음식도 맞지 않아 숙소에서 나와 과일을 사서 보충하였다. 과일값이 물값보다도 싼 것 같다. 상점과 거리는 우리의 아주 작은 시골읍내를 연상시킨다. 이 좁은 계곡마을에 인구 6만 명이 모여 산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는다. 날씨가 변화무쌍하여 일기예측이 매우 어려운 고산지대다.

자전거택시 이용해 좁은 골목 달려

어두운 밤거리를 걷다 이곳에서 운행되고 있는 자전거 택시를 타 보았다. 자전거에다 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공간과 바퀴를 매 달아 택시 대용으로 운행하고 있다. 2차 대전 당시 독일군들이 오토바이 옆에다 두 명의 군인을 태우고 달리던 사이드카 대신에 자전거로 교체한 모습과 비슷하다. 이 작은 읍내마을을 택시로 달리기에는 너무 좁고 걸어 다니기에는 다소 불편한 거리가 있어 택시 대용으로 운행되고 있다. 자전거 수레는 어둡고 좁은 골목길을 안방 드나들 듯 잘 달렸다.

'계단식 밭' 땀으로 쌓은 십만리장성

아침 6시에 출발했다. 쏭판지역의 계단식 밭이 퍽 인상적이다. 해발 2800m의 마을 주변에 위치한 산들 전체가 하나의 계단식 밭으로 펼쳐진 모습은 가히 장관이다. 가파른 산 능선의 골짜기마다 땀으로 일구어 낸 농부들의 체취가 마음을 숙연하게 만든다.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솟아오르는 경외감이 차창 밖으로 소리 없이 다가서고 있다. 아름다운 자연경관보다도 더 진한 감동이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필리핀 바우나의 산간벽지 마을을 떠 올려 보았다. 그 옛날 부족들 간의 다툼으로 깊은 산골짜기로 쫓겨온 이푸가오족이 해발 1500m, 경사 70도의 가파른 산골짜기를 개간하여 논을 일구고 삶의 터전을 이어가는 그들의 삶의 모습이 바로 이런 경관이 아닐까. 반 평도 안되는 다닥다닥 붙은 손바닥 만한 논들을 일구어 내면서 살아남아야 했던 그들의 피나는 삶의 현장들을 가만히 떠올려 보았다. 논둑과 논둑을 이어 놓으면 지구의 반 바퀴를 도는 2만2400km로 중국 만리장성의 10배에 해당되는 거리를 세세손손 개간하며 가꾸어 왔던 것이다. 그 논두렁이야말로 땀으로 쌓은 십만리장성이다.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 제도에는 문화경관(Cultural Landscape)이라는 개념이 있다. 인간에게 주어진 자연환경을 생존의 필요에 따라 적절히 가꾸어서 만들어낸 독특한 경관을 일컫는다. 필리핀 바우나의 계단식 논이 이 문화경관에 해당되어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관심을 받고 있는 것도 삶의 의지가 곧 예술이고 문화이며, 위대한 경관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증거가 아닐까. 후손들이 대를 이어 사는 유일한 생계수단이었던 그들의 계단식 논이 세계 8대 불가사이 중 하나로 뽑힐 만큼 그 웅장함으로 인해“천국으로 가는 계단”이라고 불리우고 있다.

전통 초가집에서 절구질을 한 후 키질을 통해 벼 껍질을 날리며 사는 그들의 전통생활 양식은 오히려 가장 훌륭한 관광상품으로 대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농사 이외에 수공예품을 만들어 관광객에게 파는 그들의 소박한 모습을 보면 언젠가 이푸가오족은 그들의 선조들이 일구어낸 계단식 논의 유산으로 세계에서 가장 풍요로운 종족으로 남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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