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힌 친구와의 만남
잊힌 친구와의 만남
  • 정규영 <청주 중앙동>
  • 승인 2011.10.04 17: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시댁이 코앞이다. 발길을 돌릴까 몇 번을 망설인다. 시어머님과의 관계가 소원해진 탓에 남편 없이는 시댁 가기가 쉽지가 않다. 편하지도 그렇다고 불편하지도 않았던 관계였는데, 남편이 사업으로 힘들어 할 때 나 몰라라 하신 것이 야속스러웠다. 그로 인해 어머님은 어머님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며느리인 나는 나대로, 가시 돋힌 말로 서로를 할퀴었다. 그 상처가 쉽사리 아물질 않는다. 몇 년째 그러한 터라, 올 추석 전에 혼자 찾아뵙고 싶어 나섰던 발걸음인데 다 와서는 발길을 돌린다. 터벅터벅 걷는 발걸음과 더해 한낮의 더위는 내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해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시간을 마땅히 보낼 곳을 찾던 차에 고인쇄박물관이 눈에 들어왔다. 더위나 식히고 가잔 생각에 들른 박물관에서 내 관심 밖의 ‘직지’를 알게 되었다. 가끔 TV에서 들려오면 한 귀로 흘려들었는데, 곁에 아이들도 없어 온전히 빠져들 수 있었다. 관람객이 없어 조용한데,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전시물인 직지는 나에게 많은 걸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서 와라. 친구를 많이 기다렸노라’ 라고.

복잡한 네 맘을 다 안다는 듯이 나에게 자신의 얘기를 들어보란 듯이 느껴졌다. 난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았다.

1377년, 고려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된 직지는 ‘백운화상초록 불조직지심체요절’이란 길고 긴 이름을 가진 친구였다. 그러고 보니, 나는 친구의 본명도 모른 체 얕은 아는 체를 하고 지냈다. 그 긴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백운화상이 부처님과 조사들의 설법 및 중요 가르침을 적은 책으로 선불교에 있어 최고의 책이란 걸 알았다. 내 짧은 식견으로 부처님의 그 깊은 뜻을 알 리 없지만, 하나하나 새로운 걸 알아갈수록 내 마음은 알지 모르게 가벼워져 갔다. 난 타의에 의해 조국을 떠나, 타국에 있노라고. 이런 내 심정을 아느냐고 나에게 말없이 물어오고 있었다. 서양 금속인쇄술의 자부심이라고 일컫는 구텐베르크의 활자보다 앞서 있는 직지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동양의 자랑이요, 세계기록유산으로서의 가치 또한 훌륭하다. 다만 우리 문화재가 우리 땅이 아닌, 타국에 소장되어 있어 마음 아프다. 이렇듯 소중한 것은 곁에 있을 때는 그 소중함을 제대로 모르는 것 같다. 잊히고 잃어버린 후에야 그 소중함을 깨달으니 얼마나 어리석은가.

어머님과의 서운함을 빌미로 소중한 서로를 잊고자 한 나를 돌아보았다. 서로에게 잊히는 아픔을 준 거 같아 죄스러웠다. 직지에 수록되어 있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나에게 다가왔다. 몸의 실체가 없으니 그 몸이 지은 죄와 업도 없다는 말이 큰 울림으로 말이다.

이렇듯, 나 개인에게는 물론 인류의 가치관이 흔들릴 때 바른 길잡이로서의 가치도 대단하다. 직지에 대해 부족하지만, 조금 알아가니 들어올 때의 무거운 발걸음은 온 데 간 데 없다.

여름의 지루했던 빗줄기는 흔적도 없이 가을 하늘이 높고 푸르다.

짙푸른 나무와 햇살이 너무도 싱그럽다. 여름내 길었던 비 때문에 가을에 보는 햇살이 더 반가우리라. 어머님과의 나도 그러하리라 본다. 이 서먹함이 가을 햇살처럼 기분 좋은 청량감으로 바뀌길 바라본다. 아니 바뀔 것이다. 소중한 이를 잃고 후회하고 싶지 않다.

내가 잊었던 친구를 다시금 알게 된 것처럼, 다시 처음부터 조용히 천천히 한 걸음씩 다가서야겠다. 오랜 세월 나를 묵묵히 기다려준 친구를 만난 이 뿌듯함을 가슴에 안고 시댁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새털처럼 가볍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