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면 방에 모셔두고 새우잠"
"밤이면 방에 모셔두고 새우잠"
  • 정규호 기자
  • 승인 2011.09.18 19: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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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 탄부면 CCTV 설치 마을기금 전액 사용
냉해·수해·병충해 이어 또 불안 … 농민 한숨만

마을 인근에 골프장이 건설되고 있는 보은군 탄부면 한 마을 주민들은 골프장 건설업체로부터 받은 마을 기금 2억원을 몽땅 방범용 CCTV 설치에 투입했다.

마을 주민회의를 통해 장학금을 비롯해 갖가지 기금운용 방안이 제기됐으나, 날로 심각해 지고 있는 농산물 도난 사건으로 인한 흉흉한 마을 인심을 안정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에 다른 반론은 설득력을 잃고 말았다.

농촌의 가을 민심이 심상치 않다.

냉해와 수해, 그리고 병충해까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어지면서 사상 최악의 수확량 감소가 예상되고, 이에 따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농산물 가격은 농민들에게 또 다른 불안을 안겨주고 있다.

이 때문에 농민들은 거둬들인 뒤 말리는 작업 등을 해야 하는 요즘, 농산물을 노리는 도둑들로부터 1년 농사의 결실을 지켜내느라 신경을 곧추 세우고 있다.

보은읍 성주리 이모씨(48)는 "아직 보은지역에는 크게 농산물을 도난당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하고 있으나, 고추를 비롯한 대부분의 농산물 수확량 감소로 인한 가격 급등으로 언제 도둑의 손길이 미칠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다"면서 "수백, 수천 번의 손길을 일 년 동안 쏟아부으며 정성들여 키운 농산물을 수확기에 훔쳐가는 일은 농민의 생명을 앗아가는 일과 다름없으므로 제발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바짝 마른 입술을 겨우 적시고 있다.

보은군 장갑리 박모씨(76)는 "늙은 나이에 힘겹게 지은 고추며 참깨, 들깨 등 제대로 말려야 상품성이 있는 농산물을 도둑맞지 않기 위해 밤마다 안방에 모셔 둔 채 정작 할멈과 나는 그 옆에서 새우잠을 자는 신세"라며 "농사일도 힘겨운데 요즘은 도둑을 피해 낮에는 마당에 널어 말리고, 밤이 되면 다시 집 안으로 들여놔야 하는 어려움이 더욱 크다"며 한숨을 그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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