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심을 버리자
분별심을 버리자
  • 덕일 <풍주선원 주지>
  • 승인 2011.08.15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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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언제인가 들어본 말 가운데, '도둑은 도둑놈이 알아본다'라는 말을 해서 속으로 한동안 웃었던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가끔 지혜롭다라는 말을 하죠. 지혜란 무엇인가요? 예를 들어 나무에 통달한, 다시 말해 나무에 도가 튼 정원사가 있다고 해보죠. 그는 이제 막 움트는 연꽃의 싹만 보아도 그 연꽃이 다 커서 빨간 꽃을 피울 것인지 하얀 꽃을 피울 것인지 잎이나 줄기만 봐도 안다고 합니다. 또한 그는 이제 막 옮겨 심을 작은 감나무를 보고 그 감나무가 고염나무인지 단감 또는 먹감나무인지 안다고 합니다. 그게 바로 지혜이며 올바른 판단력입니다.

정원사가 나무를 모른다면 그는 정원사가 아닐 것입니다. 나무를 모르는 정원사가 어떻게 아름다운 정원을 가꿀 수 있으며 나무를 살릴 수 있겠습니까?

나눔이란 말 속에는 무한한 펼침이며 사랑이며 그 자체가 어둠에서 밝음으로의 인도라 할 수 있습니다. 나눔은 다시 말해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펼침이며 개방인 것입니다. 침묵은 음흉스러운 어둠이며 갇힘일 뿐입니다.

불교계의 비움과 나눔은 바로 펼침, 개방, 밝음, 열림이며, 향기로운 향기를 온 세상에 번지게 하는 것이며, 이는 곧 따사로운 햇볕을 그늘진 곳에 비추이는 것일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분별심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과 저것이 다른 것임을 구별하는 것을 말하죠. 무엇이 다른 것인가를 생각하다 보면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자신의 착각이나 잘못된 생각에서 비롯됐음을 알게 됩니다. 만약에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자연히 잘못된 것을 버리게 되겠지요. 그러나 자신의 무엇이 잘못되었음을 모르는 사람이 무조건 그러한 분별심을 버린다고 하여도 잘못마저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잘못을 하나씩 버리다 보면 어느 사이엔가 분별심이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미 분별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분별심의 하나는 아닐까요? 마치 운동을 시작하는 사람의 몸놀림은 의식적인 마음을 가지고 하나의 동작들이 이뤄지지만 그러한 것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무의식적으로 상대의 움직임에 따라서 반응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운동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노력을 하지 않을 것이고 운동을 하고자 하더라도 많은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은 아직도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가 있어서 유연하지 못할 것입니다. 또 노력을 많이 한 사람이더라도 잠시라도 쉬게 되면 또다시 몸이 굳어지게 되죠. 근기에 맞게 한다고 하는 것은 운동을 할 마음이 없는 사람은 운동경기를 많이 보아서 "아 운동은 재미있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하는 것일 것이고 그래서 운동을 시작한 사람은 좋은 자세와 나쁜 자세를 알아서 좋은 자세를 열심히 몸에 익히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운동을 많이 해 잘하게 된 사람은 잠시라도 쉬게 되면 몸이 굳는다는 것을 알아 쉬지 않고 열심히 노력을 하여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분별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이제는 수행을 해야 한다 하면 뱁새가 황새를 쫓아가는 격이니 힘만 들 뿐 무슨 좋은 결과가 나올까요? 보다 좋은 것들을 많이 보고 느껴서 스스로 하고 싶은 마음이 나오게 하는 것이 먼저일 것이고 좋은 것과 나쁜 것들, 옳은 것과 그른 것들을 알게 하여 나쁘고 그른 것은 버리고 좋고 옳은 것만을 지키도록 하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고 하는 것은 분별심이 없는 마음에서 보는 현상세계입니다. '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은 분별심을 가지고 보니 잘못된 생각을 버리는 것이고 '산은 역시 산이고 물은 역시 물이다'라고 하는 것은 그러한 분별심을 버리고 보니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자유자재하게 본다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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