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충청도이며, 청주(淸州)일까
왜! 충청도이며, 청주(淸州)일까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7.18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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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김명철 <충북도교육청 장학사>

대부분의 나라들은 행정구역을 성(城), 현(縣), 주(州) 등 일정한 구역을 표시하고 있는데 유독 우리나라만 길(Road)로 행정구역을 삼고 있으니 참으로 특이한 일이다.

그것은 조선시대 최고의 지방관인 관찰사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조선시대 지방행정의 책임자인 관찰사는 임기가 불과 350일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지역의 대표적인 도시의 큰길 따라 사또로 불리는 수령, 현감, 목사들의 근무 상황을 '관찰'했던 것이다.

수령들의 임기가 1,800일 정도 되었으므로 실질적인 행정은 이들에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면 역사적으로 청주는 얼마나 맑은(淸 맑을 청) 고장일까

고려 초기까지 청주의 지명 유래와 관련하여 논란이 적지 않다. 청주의 옛 지명으로는 '상당'과 '낭자곡' 등이 있다. 이는 모두 백제계 지명이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부르는 '서원'이라는 지명은 신라통일 후 전국에 5개의 소경을 설치한 이후 지명이다.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후 전국의 행정 구역을 9주 5소경으로 나누고 3배나 넓어진 국토를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때 5소경은 말 그대로 작은 서울로 한반도의 한쪽에 치우친 경주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특별 행정구역으로 지방을 다스리는 핵심 지역이었다.

특히 백제와 고구려, 신라 삼국의 접경지대인 충주에 '중원경'을, 그리고 청주에 '서원경'을 두고 다스리게 되었다.

그런데 고려 초기에 갑자기 '청주'로 불린 연유는 불명확하다.

우리는 흔히 양(陽)이라는 명칭이 들어가는 고장은 '하천 이북에 읍치가 입지하는 경우'이고, 주(州)가 들어가는 고장은 '하천 남쪽에 위치한 데서 구분한다' 그러면 '주'의 유래는 밝혀졌으니, 淸(청)의 유래만 확인하면 되는 셈이다.

맑을 청(淸)을 쓰게 된 정확한 지명의 유래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는 없으나 굳이 그 유래를 찾는다면 '고려사' 열전 권제5 홍유조에서 찾아볼 수 있다.

후고구려의 궁예가 혁신적인 정치를 통해 발전된 국가를 건설하려고 할 때 가장 적극적으로 지원했던 지역이 바로 청주지역의 호족들이었다.

궁예는 철원에 새로운 수도를 건설할 때 청주 지역의 주민 3000호를 이주시켜 수도의 면모를 일신하고자 했다.

바로 청주지역의 호족들과 주민들의 의식이 친궁예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이 정권을 잡았으니 청주지역의 호족들이 왕건에 대하여 적대적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태조 왕건은 '청주에서의 반란이 많이 일어나자 부하 유금필에게 1500명의 병사를 주어 진천(鎭 진압할 진, 川 무심천)에 주둔하게 하였고 이로 말미암아 더 이상 반란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다시 설명하자면 무심천변의 청주를 진압하기 위해 군대가 주둔했던 곳이 진천이고, 진천에 군사를 주둔한 다음부터 청주가 반란 없이 깨끗해졌다는 의미에서 '맑은 고을 청주'라 불린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맑은 고을 청주' 이름만큼 역사적 연유는 별로 아름답지 못하지만 직지로 대표되는 지식과 나눔, 교육의 전통으로 새로운 청주의 역사를 만들어 가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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