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과학자의 꿈
노과학자의 꿈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4.08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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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박은선 <청주방송PD>

지난 3월초 어느 상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고인의 가시는 길을 함께해 준 문상객들에게 으레 보내는 여느 답례 편지와 사뭇 달랐다. 고인의 삶에 대한 한 편의 작은 전기문이라고 할 만큼 공감을 주는 문장이었다.

'평소에 아인슈타인을 그리도 좋아하시며 항상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시던 아버님께서 40여년간의 교직생활을 접으시고 2000년 2월 퇴직하셨습니다.

이제는 쉬시려는가보다라는 기대와는 달리, 공부하는 것이 천직이며 배우고 가르침에는 끝이 없다 하시며 아인슈타인 연구소를 차리시고 과학영재교육에 열정을 쏟으셨습니다.'

선친의 항암치료 주치의 노릇을 했던 고 김영대 교수의 장남 김백수 원장의 편지에는 노과학자의 삶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항암치료 와중에도 아인슈타인 사진이 놓인 허름한 나무책상에 앉아 평소와 같이 공부하시면서 '인생은 인내하면서 노력하는 과정으로 이어지는 것'이라시며 묵묵히 참아내시고 과학영재교육에서 손을 놓지 않으시더니 지난 2월26일에 영면하셨습니다.'

지난 2000년 충북대학교에서 정년 퇴임한 고 김영대 교수는 곧바로 후학들을 가르치기 위한 <AE연구소>를 설립했다. 아인슈타인의 이름을 딴 연구소는 과학꿈나무 양성을 위한 온실이었다. 한결같은 노과학자의 정진에 제자들이 감복했다.

과학 교사인 제자들도 교육 봉사를 시작했다. 청주에서 시작, 충주와 단양은 물론 서울까지 이어져 200여명의 학생이 거쳐갔다. 과학영재고와 카이스트를 비롯한 국내외 유수의 명문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배출되었다.

<AE연구소>는 교육비를 받지 않았으며 해마다 창립기념일에 어린 학생들이 스스로 준비한 세미나를 개최했고, 크리스마스 과학특강을 열어왔다. 모든 세미나는 영어로 진행했고 그 전통은 지금껏 살아있다.

노과학자의 열정과 꿈은 수많은 김영대로 이어졌다. 당장 일요일마다 모여 학습할 공간이 문제가 되자 <흥덕문화의집>에서 공간을 제공, <AE연구소>의 명맥을 이을 수 있게 했다.

제자들 역시 스승의 뜻을 살려 교육봉사를 지속하기로 했고, 자모들 또한 고 김영대 교수의 역할을 분담하며 <AE연구소>의 정신을 구현하는 일에 뜻을 모으고 있다.

고 김영대 교수는 우리 사회가 고민하는 문제 몇 가지를 해결할 수 있는 혜안을 보여줬다. 우선 과학교육의 필요성을 삶으로 웅변해왔다. 제도권교육에서 부족한 과학영재교육을 시작했고, 평생의 삶을 통해 큰 울림을 만들어냈다. 또한 고령화 사회 문제의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은퇴 교수들의 역할 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다. 카이스트 서남표 총장은 최근 한국의 과학자들이 은퇴후 제역할을 찾지 못하는 것은 국가적 낭비라고 지적했다.

고 김영대 교수의 삶이 바로 이 문제에 대한 대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즉 은퇴 과학자들의 전문지식으로 제도권 교육의 미진한 면을 보완하자는 것이다. 은퇴 과학자들로서는 여전히 사회에 기여할 수 있고, 과학꿈나무들에게는 과학자의 길을 가는 데 힘이 될 사표를 만나는 일이 될 것이다.

고 김영대 교수 추모세미나가 열린다. 11일 <흥덕문화의집>에서 할아버지 과학자를 사사한 어린 과학꿈나무들이 물리 수학등 학습내용을 발표한다. 노과학자의 뜻을 함께 해왔던 김용은 교수 등 충북대학교 교수들도 특강을 통해 고인의 뜻을 기린다고 한다.

키케로는 '모든 것의 시초는 작은 것이다'고 했다. 작은 씨앗을 심어준 고 김영대 교수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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