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낭소리와 장기하
워낭소리와 장기하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3.26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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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규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장기하와 워낭소리, 독립영화와 인디밴드의 생소함이 확산되고 있다.

'워낭소리'는 확연하게 달라진 영화판과 관객들의 수준을 이야기할 수 있게 한다.

독립영화라는 변방의 몸짓이 흥행의 성공이라는 상업영화의 잣대로 가늠할 수 있게 한 배경에는 어김없이 관객의 숫자가 적용된다.

1억여원의 저예산을 들여 300만에 가까운 관객을 동원했다는 사실은 경제적 가치와 정량적 척도만을 생각할 경우 분명한 '신화'일 수 있다.

인간의 나이로 치면 백수에 가까운 삶을 이어온 마흔 살 소와, 역시 늙어버려 머리가 아프고 다리도 불편하지만 결코 농사일을 멈추지 않는 촌로의 교감은 충분한 노스탤지어다.

이런 아득한 향수(鄕愁)는 속절없이 빠름만을 좇아야 하는 현실 세계와는 다른 피안(彼岸)일 것이며, 탈도시를 소망하는 현대인들에게 전원 교향곡으로 작용하는 꿈의 세계일 것이다.

조용하면서 서두르지 않고, 또 숙련되게 꾸며지지 않은 어눌함은 그동안 우리가 익숙하게 길들여진 잘 꾸며낸 이야기와 철저하게 약속된 연출과는 다른 관점에서 우리를 감동하게 한다.

문제는 영화 '워낭소리'가 보통명사로서의 본뜻을 뛰어넘어 신화가 되거나 일종의 신드롬이 되고 있는 사회적 현상에서 수많은 관객들이 독립영화가 추구하는 본질의 의미를 얼마만큼 이해하고 접근하느냐에 있다.

물론 독립영화가 영화에서의 순수한 예술성만을 지나치게 추구하거나, 저예산으로 일관하는 제작방식을 고집하는 일종의 별동대로서의 자리를 고수하는 차별성의 전유물로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독립영화들이 고집하는 자본에의 종속이거나 소외된 인간상과 주제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이 보다 따뜻한 가슴과 시선을 통해 관심이 좀 더 많아져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없다.

그야말로 독립적 장르로서의 노둣돌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소망을 300만에 육박하는 관객들은 기억해야 할 것이며, 그런 애정은 일회적 신드롬으로 멈춰서는 안된다.

장기하는 인디밴드 '장기하와 얼굴들'로 활약하는 가수다.

2008년 데뷔한 그는 EBS의 음악프로그램 스페이스 공감과 홍대 앞 인디밴드 클럽 등이 주요 활동무대로, 기존의 대중가요와는 다른 차별성을 노래한다.

독특한 선율과 다소 정제되지 않은 노랫말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추구하는 허심탄회함은 오히려 중독성이 강하고 그런 매력은 열성팬들의 호응으로 이어진다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미지근해 속이 적잖이 쓰려온다.

눅눅한 비닐장판에 발바닥이

쩍하고 달라붙었다 떨어진다.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어(후략)'

로 시작하는 이들의 노래 '싸구려 커피'는 가사가 심상치 않다.

그럼에도 지금처럼 극심한 음반계의 불황에다 인디밴드가 갖는 대중적 한계를 극복하고 1만장이라는 경이적인 판매기록을 올리고 있다.

다분히 염세적으로 느껴지는 가사와 독특한 리듬의 이 노래는 분명 대중가요의 주류와는 일정 부분 거리를 두고 있는 비주류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열광하고 관심을 가지며, 트렌드로 만들어 버린다.

이것이 문화의 힘이다.

비주류가 언제든지 주류가 될 수 있고, 소수가 다수를 충분히 설득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는 것이 인디밴드와 독립영화를 통해 나타나는 문화의 역동성이다.

다만 영화 '워낭소리'가 300만에 가까운 관객을 동원하고도 엉뚱한 상업주의에 휘말려 순수를 잃어버리는 일은 없을지 의문이다. 인디밴드 장기하가 실험성의 추구를 떠나 대중주의에 쉽게 순결을 빼앗기지는 않는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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