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상궁' 처지된 '서민경제'
'김 상궁' 처지된 '서민경제'
  • 한인섭 기자
  • 승인 2008.10.29 21: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데스크의 주장
한 인 섭 정치부장

종종 찾았던 칼국수 집에 들렀더니 자리를 차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붐볐다. 겸상을 했던 지인은 "경기가 좋지 않다 보니 싼값의 칼국수 집으로 몰릴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나름의 진단을 내놓았다. 평소에도 이 집은 점심시간이면 붐볐던 곳이다.

귀갓길 아파트단지 울타리 밖의 상가 건물 삼겹살집이 며칠사이 달라 보인다. 대규모단지 주변이어서 평소 가족단위 손님들이 많이 찾는 곳인데 눈여겨 봤더니 한두팀만 앉아있어 휑해 보였다. 사료값 파동으로 삼겹살값이 껑충 뛰었을 때도 요지부동 북적였던 곳인데 누가봐도 곤두박질 친 서민경제의 단면으로 인식할 만 했다.

종종 찾았던 두 식당은 모두 장사가 저 정도만 된다면 빚을 내서라도 해볼 만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의 업소였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닥친 후 서민들이 부담없이 찾았던 두 업소의 '공기'는 다른 모양으로 달라졌지만, 경제 상황을 대변하는 '스펙트럼'으로 보였다. 평소 장사가 잘될 땐 맛이나 서비스를 손님이 붐비는 비결로 꼽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경제심리가 워낙 위축되다보니 장사가 잘되는 것이나, 손님들의 발길이 끊긴 이유에 대해 일반인들은 그저 나빠진 경기 탓을 하고 싶은 심리가 작용하는 것 같다. 간단한 해석이지만 그럴듯해 보여 굳이 부인하려들지 않는 게 요즘 경제를 보는 일반적인 시각이 된듯 하다.

최근 1∼2년 전부터 '펀드'로 대표되는 금융상품 한두개 정도 갖지 않으면 '맹추' 취급 받았던 사회 분위기는 금융위기가 닥친 요즘 '체감'을 더욱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주식에 전혀 관심이 없던 '재테크 맹추'들도 안정적 수익을 보장한다던 펀드에 손을 대는 일이 흔했다. 이랬던 이들이 몇달 사이 반토막 된 통장을 들고 황당해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탓에 체감경기는 더욱 오그라들 수밖에 없어 보인다.

반대로 경기가 회복되는 양상으로 전환되려면 우선 주식시장부터 살아나야 할텐데 아직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 오히려 코스피 지수가 오늘은 얼마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한담(閑談)이 나올 정도이니 정부의 금융대책이 피부에 와 닿지를 않는 모양이다. 일부 투자전문가들은 요즘의 위기가 100년에 한번 맞기 어려운 투자 호기라고도 주장하지만 믿으려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28일에는 원·달러 환율 1500원 돌파를 앞두고 있는데다 원·엔 환율은 18년만에 1590원을 넘어 1600원으로 치달아 국내 금융시장 뿐만 아니라 세계 금융시장을 위협하는 상황까지 치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경제팀은 속시원한 대책이 없다. 연기금을 동원한 주식시장 부양책을 내놓았지만 효과는 미지수인 것 같다. 국민들은 '내핍 생활을 해야겠구나'라거나 '언젠가는 경기가 좋아지겠지'라는 막연함에 갖혀 있다. 임금님 '낙점'만 바라고 살았던 구중궁궐 '김 상궁'과 같은 신세나 다름없게 된 셈이다.

한참 전부터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으로 대표되는 경제팀 경질 얘기가 나왔고, 며칠 사이 더 힘을 받고 있다. '불신'이 반복된 탓인데 여권도 이젠 도리가 없는 모양이다. 경제주체들을 '김 상궁' 처지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일단 희망이라도 안겨야 하지 않을까. 그런 다음 적절한 처방이 뒤따라야 할 것 같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